경기 용인시에서 후진하던 차량에 치인 70대 외상 환자가 수술이 가능한 병원 중환자실을 찾아 헤매다 2시간여 만에 목숨을 잃는 사고가 그제 발생했다. 119구급대가 복강 내 출혈이 의심된 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경기와 인천, 충남의 12개 병원에 문의했으나 갈 곳이 없었다. 11개 병원에서 “병상이 없다”, “전문의가 없다”, “상급병원으로 가라”는 이유로 치료를 거절당했다. 2차 병원 한 곳에서 응급처치만 받은 환자는 수술을 받기 위해 100㎞ 정도 떨어진 의정부의 병원으로 가는 도중 숨졌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환자의 ‘뺑뺑이 사망’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나마 상황이 낫다는 수도권마저 속수무책이었다. 거의 모든 의료 시설이 수도권에 편중돼 있는데도 환자를 살릴 ‘골든아워’ 1시간 내에 갈 만한 병원이 없었던 것이다. 구급대가 문의한 12곳 중에서는 중증외상환자 응급 소생에서 수술까지 담당하는 최종 의료 기관인 권역외상센터가 있는 병원만 3곳이다. 피해자가 사고 당시 의식이 있어 응급 수술만 받았으면 소생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하니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정부가 ‘전국 어디서나 최종 치료까지 책임지는 응급의료’를 목표로 한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한 게 두 달 전이다. 정부는 현장·이송부터 응급실 진료, 수술 등 최종 치료까지 지역 완결적 응급의료 체계를 갖추겠다고 했다. 지난해 7월 서울아산병원의 30대 간호사가 출근해 극심한 두통 끝에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숨지고, 지난 3월 대구 한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여아가 2시간 동안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사망하는 등 사고가 잇따르자 내놓은 대책이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쳤다는데 도대체 무엇을 고쳤는지 의문이다.
‘뺑뺑이 환자’ 사망은 응급실 병상 및 의료 인력 부족, 낮은 수가 등이 복합적으로 겹쳐 발생하는 고질적인 문제다. 무엇보다 응급환자 발생 시 상황을 파악해 조정하는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없다. 경증 응급환자 대부분이 차지한 병상을 응급환자에게 강제 배정하기도 어렵다. 어제 당정이 ‘지역 응급의료 상황실’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이송하는 환자는 병원에서 반드시 수용하도록 한 만큼 이번에는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길 기대한다. 대학 입시에서 의대 쏠림 현상이 심각한데 응급실 의사가 부족한 상황도 손볼 필요가 있다. 응급실이 없어 목숨을 잃는 일만은 더는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