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와 권위의 ‘크리스티홍콩 봄 경매’… 760만명 실시간 시청

장 미쉘 바스키아, 제프 쿤스, 야요이 쿠사마, 르네 마그리트 등의 명작 출품
‘블랙’ 105억 원, ‘성스러운 하트’ 102억 원 낙찰
29개국 출품작 중 50%가 추정가 훌쩍 뛰어넘어
발해의 유물, 청동무녀상(698∼926) 만난다

“4800만홍콩달러(HKD)입니다. 더 부르실 분 계시나요? 5000만 나왔습니다, 5000만. 또 누구 더 올리실… 네, 5100만으로 올라갑니다. 더 없나요?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오호, 5150만 나왔어요. 이제 더 없나요? … (좌우를 둘러본 뒤) 네. 5150만HKD에 팔렸습니다.”  

 

경매사가 손바닥 크기의 작은 나무망치를 ‘탕’ 하고 내려치며 “솔드(Sold·낙찰)”라고 크게 외친다.

‘크리스티홍콩 봄 경매’에서 경매사 아드리안 마이어가 장 미쉘 바스키아의 작품 ‘블랙’(1986)의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블랙’은 미술품 최고가인 105억 원에 낙찰됐다. 홍콩=이제원 선임기자

장미셸 바스키아의 작품 ‘블랙’(1986)이 5분도 안 되어 86억6100만원에 팔려 나가는 순간이다. 구매자 수수료를 포함하면 105억원이 된다. 경매 공식 판매가다.

 

‘크리스티홍콩 봄 경매’가 5월24일부터 6월1일까지 홍콩 컨벤션센터(HKCEC)에서 열렸다.

 

‘20/21세기 미술 부문’은 28∼29일 이틀간 총 4개의 경매로 진행됐다. ‘20/21세기 미술 이브닝 경매’, ‘포스트-밀레니엄 이브닝 경매’, ‘20세기 미술 데이 경매’ 그리고 ‘21세기 미술 데이 경매’를 통해 판매 총액 12억4462만3520HKD(약 2095억원)를 달성했다. 29개국의 출품작 중 50%가 추정가를 훌쩍 뛰어넘는 높은 금액에 판매됐다.

장 미쉘 바스키아의 ‘블랙’(1986)
제프 쿤스의 작품 ‘성스러운 하트’는 6087만5000 홍콩달러(102억 원)에 팔렸다. 홍콩=이제원 선임기자

제프 쿤스의 ‘성스러운 하트’는 6087만5000HKD(102억원)에 낙찰됐다. 구사마 야요이의 ‘꽃’은 5845만5000HKD(98억원)로, 르네 마그리트 ‘연인의 산책로’가 5119만5000HKD(86억원)로 뒤를 이었다.

 

한국 작품으로는 이우환의 ‘다이얼로그’가 1126만5000HKD(19억원)를 기록했다. 부동산·호텔 사업가로 알려진 미국의 컬렉터 제럴드 파인버그가 소장했던 작품으로, 새 주인을 찾은 셈이다.

 

300만HKD로 출발한 박서보의 ‘묘법 No.15-76’은 20만∼30만 단위로 상승 호가를 거듭하더니 마침내 620만HKD(10억4300만원)까지 이르며 순식간에 추정가의 두 배를 넘어섰다. 수수료를 더한 공식 판매가는 13억원이다.

 

김창열의 ‘물방울 No.16’은 504만HKD(8억5000만원)에 팔려 나갔다.

현지 관람객들이 한국 작가 이우환의 작품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홍콩=이제원 선임기자
한국 작가 이우환의 ‘다이얼로그’가 경매에 올랐다. 이는 1126만5000 HKD(19억원)에 판매됐다. 홍콩=이제원 선임기자

경매사는 경매장의 꽃이자 마법사다. 이들의 액션은 당당하다. 단호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팔을 쭉 뻗거나 허리를 돌려 좌우를 확인하는 등 좌중의 이목을 휘감는 데 망설임이 없다.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어조는 강하다. 흡인력과 설득력이 배가되는 이유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분위기를 주도한다. 강약을 조절하고 흐름을 타면서 치열한 호가를 이끌어 낸다. 망설이는 컬렉터들의 결정을 기다리며 포용하는가 하면 단호히 낙찰해야 할 때를 꿰뚫어 구사한다.

 

‘호박’ 시리즈로 유명한 구사마의 작품 ‘꽃’이 생생한 사례다. 그 인기를 반영하듯 쉽게 보기 힘든 실로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출발은 3000만HKD. 곧장 3200만, 3400만, 3600만, 3800만으로 200만씩 몸집을 불려가더니 7대의 전화 응찰까지 더해지자 4000만과 4500만을 연이어 돌파하고 4650만에서 한 숨을 쉰 후, 다시 100만을 붙여 4750만 그리고 4800만까지 감아올리는 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능숙한 중견 경매사 에이드리언 마이어의 순발력과 경험이 버무려낸 결과다.

 

구사마는 이번 경매에 ‘꽃’과 ‘비너스상’, ‘인피니티-네츠(Infinity-NETS)’, ‘호박’, 보트조각 등 5점을 냈는데 모두 낙찰되어 2억1600만HKD(364억원)를 쌓았다.

야요이 쿠사마의 ‘꽃’은 인기를 반영하듯 실로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능숙한 경매사 아드리안 마이어의 순발력과 경험이 버팀목이 됐다. 크리스티홍콩 제공

경매장 전면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는 10개국 화폐 단위로 속속 올라가는 가격이 표기된다. HKD, 미국 달러(USD), 영국 파운드(GBP), 일본 엔(JPY), 유럽 유로(EUR), 중국 위안(CNY), 싱가포르달러(SGD), 대만달러(TWD), 인도네시아 루피아(IDR), 한국 원(KRW) 순이다.

 

경매장에서는 ‘밀리언 달러스’라는 단어가 수만 번도 더 울려 퍼졌다.

 

구매자의 20%는 신규 고객이다. 이 가운데 50%가 밀레니얼(1980∼1990년대 출생) 세대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홍콩에는 상속세, 증여세 등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경매는 생중계된 플랫폼을 통해 약 760만명이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오는 가을 크리스티홍콩 경매는 중화권의 전설적 스타이자 컬렉터인 저우룬제(주걸륜·Jay Chou)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만나보기 몹시 어려운 발해의 유물, 청동무녀상. 15cm 높이다. 홍콩=김신성 선임기자

특별히 반가운 일은 경매장 맞은편 전시장에서 만나 보기 몹시 어려운 발해(698∼926)의 유물 청동무녀상을 발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