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휩싸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끝내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현재까지 나온 의혹 대상자만 10명인 데다 구체적인 특혜 채용 정황까지 속속 드러나는 상황에서도 감사원 감사만큼은 물러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형사 고발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라 두 기관 사이 강대강 대치가 이어질 전망이다.
선관위는 2일 경기 과천 선관위 청사에서 노태악 선관위원장 주재로 위원회의를 열고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받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선관위는 회의 후 보도자료를 통해 “국회 국정조사,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와 수사기관의 수사에는 성실히 임한다”면서도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에 위원들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는 이유로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을 내세우고 있다. 헌법 97조는 감사원의 감찰 대상을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로 규정하고 있는데,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또 ‘선관위 소속 공무원의 인사 사무에 대한 감사는 사무총장이 한다’는 국가공무원법 17조에 따라 인사 감사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감사원은 감사원 감사를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는 감사원법 조항을 근거로 선관위를 상대로 고발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감사원은 “선관위는 감사대상에 해당하지만 그간 선거관리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감사를 자제해 온 것”이라면서 “정당한 감사활동을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감사원법 제51조의 규정에 따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와 달리 선관위는 이번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국회 국정조사, 권익위 조사, 수사기관의 수사는 받아들이고 있다. 권익위는 전날 “선관위가 참여하는 합동조사로는 국민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며 단독 조사에 착수했다. 이와 별개로 선관위는 전·현직 직원들의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족까지 범위를 확대한 가족 채용 전수조사를 이달 중 마무리할 계획이다.
선관위는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을 받고 있는 박찬진 전 사무총장, 송봉섭 전 사무차장, 신우용 제주 선관위 상임위원, 김정규 경남 선관위 총무과장을 이날 경찰청에 수사의뢰했다. 또 김 과장과 박 전 사무총장 자녀 채용 과정에 연루된 전남 선관위 직원 3명 등 총 4명에 대한 징계 의결을 다음 주 중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이번 의혹을 계기로 중앙위원회 내 독립기구로 감사위원회도 설치하기로 했다. 외부 견제와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를 위원으로 선임할 방침이다.
이번 의혹으로 자진사퇴한 박 전 총장과 송 전 차장 후임 인선에도 착수했다. 특히 사무총장은 철저한 검증을 위해 검증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선관위는 후임 사무총장의 경우 외부인사 영입을 고려하고 있지만, 사무차장은 내부 승진을 통해 임명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