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정부는 5G 상용화를 추진하면서 3.5㎓와 28㎓ 주파수를 경매에 부쳤다. 이동통신 3사는 2조9960억원에 3.5㎓를, 6223억원에 28㎓를 확보했다. 이듬해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하고 약 4년이 지난 현재, 정부는 이통 3사가 가져간 28㎓ 주파수를 회수했다. 주파수 회수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28㎓ 주파수는 기존 LTE보다 정보 전송 속도가 20배 빠르다며 주목받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8㎓가 뭐기에?
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통신업계에 따르면 5G는 음성·데이터 통신을 넘어 사물을 연결하는 융합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는 통신이다. 사물인터넷(IoT), 자동차 자율주행, 가상현실(VR) 등의 구현을 뒷받침한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정의한 5G의 최대 다운로드 속도는 20Gbps(초당 기가비트)다. 실제 이 속도를 내려면 더 높고, 넓은 주파수 대역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28㎓대를 이용하기로 했다. 5G에 26㎓대 주파수를 쓰기로 한 나라도 있다. 2018년 각 통신사는 26.5∼28.9㎓ 주파수 2400㎒를 800㎒씩 나눠 가졌다.
주파수 대역폭은 흔히 도로 폭에 비유된다. 3.5㎓ 대역폭은 100㎒로, 28㎓에서 이용할 수 있는 대역폭이 8배 넓다. 3.5㎓가 1차선 도로라면, 28㎓는 8차선 도로다. 그만큼 교통 체증 없이 많은 양의 차(데이터)가 오갈 수 있는 셈이다. 더구나 28㎓는 새로 개척한 주파수라 다른 무선통신의 간섭을 덜 받는다. 이 때문에 이론상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다만, 28㎓는 도달 거리가 약 100∼150m 정도밖에 되지 않고, 장애물을 피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이동통신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현재 통신사들은 3.5㎓를 5G 이동통신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28㎓ 인프라 먼저 vs 서비스 먼저
정부는 2018년 28㎓ 할당 조건으로 통신사별로 기지국 1만5000개씩 구축하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28㎓ 기지국은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SK텔레콤 1605개, KT 1585개, LG유플러스 1868개 구축에 그쳤다. 정부는 조건을 이행하지 않았기에 이통사들에게서 주파수를 회수했다.
28㎓를 둘러싼 정부와 이통사의 입장 차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논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2018년 당시 세계 최초로 5G 서비스를 준비하는 것이다 보니 28㎓ 활용에 대한 불확실성은 있었다.
정부는 기지국을 설치하면 이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가 나올 것으로 봤다. 통신사들이 투자 의지가 없다며 유감을 표했다.
통신사들은 홀로그램이나 증강현실(AR) 등에 필요할 수 있다는 큰 그림 아래 28㎓를 확보했으나 시간이 지나도 수요가 없었다고 해명한다. 28㎓를 지원하는 스마트폰이 없고,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도 부족해 수익 모델이 없는 상황에서 기지국 설치에 투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의 실망은 커졌다. 5G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으나 비싼 요금만큼 어디서나 체감할 정도로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불만이다. LTE보다 20배 빠르다고 한 초기 5G 광고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이통 3사가 과장광고를 했다며 33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지난해 품질평가에서 내려받기 속도는 이통 3사 평균 896Mbps(0.896Gbps) 수준이었다.
◆28㎓ 활용 기술 개발은 계속돼야
정부도, 이통사도, 전문가도 28㎓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데 동의한다. 머지않아 AR나 VR 등 새로운 유행이 등장하면 지금의 3.5㎓만으로는 부족한 순간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5G를 넘어 6G 시대에 28㎓와 같은 고대역 주파수를 활용하게 되는데, 선제적으로 기술을 축적해 둬야 한다.
이에 정부는 28㎓를 활용할 제4통신사를 찾는 노력을 계속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달 28㎓ 주파수 할당 방안 공고를 낼 예정이다. 앞서 정부는 800㎒ 폭을 신규 사업자에게 할당하고, 해당 사업자가 전국망 구축을 희망하면 3.7㎓도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기장 등 사람이 밀집한 지역에 핫스팟으로 28㎓ 망을 구축해 특화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28㎓는 건물이나 토지 등 특정 구역에서 사용하는 ‘5G 특화망(이음5G)’으로 배정 중이다. 네이버 제2사옥, LG이노텍 구미2공장, 삼성서울병원 등에 구축해 자율이동로봇 운용 등에 쓰이고 있다. 이달부터는 28㎓를 지하철 2, 5∼8호선 와이파이 백홀(주요 정보통신망과 휴대전화 등 이용자를 잇는 체계)로 활용하고 있다.
통신사들도 고대역 주파수 활용 기술 개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5G 상용화로 한국이 기술을 주도했고, 특허 등 한 단계 진일보하면서 국제적으로 정보기술(IT) 강국 이미지 제고 등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며 “6G까지 가능성을 열어 두고 기술 개발과 활용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파수 정책과 관련, 홍인기 경희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정부나 통신사들은 이동통신 주파수를 세분화해서 설명해야 할 것”이라며 “빠른 속도는 전국 어디서나 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 특정 서비스에서만 된다고 국민 이해도를 높여야 혼선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28㎓ 기술 개발은 계속해야 한다”며 “이를 이용할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면 새로운 판이 펼쳐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