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뱃길로 4시간 달려야 만나는 신비의 섬/파란만장 ‘홍어 장수’ 문순득의 표류기 만나는 정약전 유배지/상산봉 오르면 다도해 한눈에/돈목해변 동양 최대 모래언덕 서면 사하라사막 ‘점프’
세찬 바람이 분다. 고운 모래 공중으로 흩뿌리며. 억겁의 세월 파도와 강한 바닷바람은 시시포스처럼 모래를 끊임없이 산 위로 밀어 올렸나 보다. 바람이 조각한 물결무늬가 모래 위에 또렷하게 새겨진 우이도 돈목해변의 거대한 모래 언덕.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오솔길 숨 가쁘게 올라 정상에 서니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로 순간 이동한 듯 환상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파란만장 ‘홍어 장수’ 문순득의 표류기
전남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로 가는 길은 매우 험난하다. 목포에서 3∼4시간 뱃길을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목포여객연안터미널에서 손님을 태운 섬사랑 6호는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도초도를 거쳐 우이도로 향한다. 오랫동안 배를 타야 하지만 섬이 1004개라 ‘천사의 섬’으로 불리는 신안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답게 바다를 꾸미는 수많은 예쁜 섬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 이름들이 재미있다. 오른쪽으로 북한산처럼 암봉으로 이뤄져 풍광이 그림처럼 뛰어난 비금도 ‘그림산’에 감탄을 쏟아내기 무섭게 경치가 좋은 ‘경치도’가 혼을 빼놓는다. 온통 하얀 암벽을 자랑하는 소누도와 정상의 소나무와 신비로운 동굴이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우이도의 ‘수문장’ 가도가 등장하면 잠시 후 우이도항(진리마을)에 닿는다.
선착장에서 가장 먼저 여행자를 반기는 이는 ‘홍어 장수’ 문순득(1777∼1847). 왼손에 노를 잡고 오른손을 들어 인사하는 그의 동상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빼곡하게 담겼다. 1801년(순조 1년) 12월 24세의 문순득은 작은아버지 등 마을 사람 6명과 함께 우이도 남쪽 수백 리에 있는 태사도(흑산도)에 홍어를 사러 갔다가 이듬해 1월18일 돌아오는 길에 폭풍을 만나 표류했고 2월2월 일본 오키나와까지 떠밀려 갔다. 그해 10월7일 3척의 배로 중국을 향해 출발했지만 다시 표류해 11월1일 도착한 곳은 더 남쪽인 필리핀. 이후 문순득 일행은 광저우, 마카오, 베이징, 의주, 서울을 거쳐 1805년 1월8일 우이도로 귀향한다.
그의 파란만장한 표류기가 이처럼 날짜까지 정확히 기록된 것은 우이도(소흑산도)와 흑산도(대흑산도)에 유배당한 손암 정약전 덕분이다. 그는 우이도에서 문순득을 만나 표류기를 날짜별로 정리한 ‘표해시말(漂海始末)’을 남겼고 흑산도에서는 장창대를 만나 유명한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집필했다. 표해시말에는 표류지의 풍속, 언어, 가옥, 선박 등에 관한 기록이 자세하게 적혀 귀중한 연구 자료로 평가된다.
조선시대 섬마을 포구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진리 선창과 마리아상으로 빚은 밀양 박씨 열녀각을 지나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문순득 생가를 만난다. 정약전은 문순득에게 ‘세상에서 네가 처음’이라는 의미의 ‘천초(天初)’라는 별명을 지어 줬단다. 정약전은 자신이 천주교를 처음 접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문순득이 필리핀, 마카오 등에서 접한 천주교 문화와 성당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천주교를 처음 접한 이가 문순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문순득의 표류기는 강진에 유배 중이던 정약전의 동생 다산 정약용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표류기를 통해 필리핀 도독령에서 사용하는 화폐의 유용함을 알게 됐고 저서 ‘경세유표’에서 조선의 화폐 개혁을 주장한다. 문순득 생가로 가는 길에서는 정약전의 동상도 만난다. 문순득은 정약전을 가족처럼 모셨고 정약전이 유배지에서 타계하자 극진하게 장례를 치러준 것으로 전해진다.
◆상산봉 오르면 다도해 한눈에
우이도(牛耳島)는 서쪽 섬 양쪽에 튀어나온 2개의 반도가 소의 귀처럼 생겨 이런 이름을 얻었다. 주로 우이도 동쪽의 우이1구 진리마을, 서쪽 우이2구 돈목마을과 성촌마을을 여행하는데 차로 이동할 수 있는 도로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한다. 우이도로 들어가는 배가 하루 한 편이라 1박2일은 필수. 목포에서 오전 11시45분 출발한 섬사랑 6호는 도초도를 거쳐 우이도를 시계 방향으로 돌며 우이1구(진리)∼서소우이도∼동소우이도∼예리∼우이2구(돈목·성촌)를 거쳐 도초도로 돌아가 1박 한다. 이 배는 다음 날 오전 6시20분에 도초도에서 출항해 반대 순서로 우이2구∼예리∼동소우이도∼서소우이도∼우이1구를 거쳐 오전 11시15분 목포에 도착한다.
오후 1시 목포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을 이용하면 도초도까지 걸리는 시간이 2시간20분에서 1시간으로 단축된다. 다만 도초도에서 오후 2시15분 출발하는 같은 배인 섬사랑 6호로 갈아타야 한다. 물론 당일치기도 가능하다. 도초도에서 오전 6시20분 배를 타고 우이2구로 들어와 이곳에서 오후 3시40분∼3시50분 배를 타고 다시 도초도로 나가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우이도를 찾은 여행자들은 대부분 우이도에서 최소 1박2일 또는 2박3일을 선택한다. 우이도 정상인 상산봉 등산 등 한나절로는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볼 것이 많기 때문이다.
우이1구에서 2구로 가려면 2㎞ 거리의 탐방로 ‘달뜬 몰랑길’을 따라가면 된다. 삼거리인 진리고개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우이도에서 가장 높은 상산봉(361m)에 닿는다. 정상에 서면 우이도항, 가도, 송도, 동·서소우이도, 비금도, 도초도, 하의도, 상·하태도 등 ‘천사의 섬’이 몽환적인 수채화를 그리는 풍경을 만난다. 다시 진리고개로 내려와 돈목·성촌 마을 쪽으로 길을 잡자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짙은 숲길이 펼쳐진다. 폐허가 된 집터, 돌담, 우물은 이곳에 한때 사람이 살았음을 말한다. 해적들을 피해 들어온 이들이 살던 대초리 마을로 450년 역사를 지녔지만 이제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다.
◆동양 최대의 모래 언덕을 만나다
대초리 사람들의 팍팍했던 삶을 뒤로하고 걷다 보면 시야가 탁 트이며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 주는 돈목해변을 만난다. 길이 1.5㎞, 너비 300m 달하는 해변은 모래가 곱고 단단하며 경사가 완만하다. 또 만의 안쪽에 위치해 파도가 잔잔하기에 해수욕과 해양 스포츠에 적합한 해수욕장으로 인기를 누린다. 참지 못하고 신발을 벗어 던진 채 맨발에 닿는 맑고 투명한 바닷물과 모래의 촉감을 느끼며 천천히 걷는다.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며.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보니 해변은 인적이 드물다. 이 넓은 해변을 나 혼자 전세 냈으니 부자가 된 기분. 섬에는 멧돼지가 많았는데 사냥할 때 해변으로 몰면 쉽게 잡을 수 있었기에 ‘돈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먼 길을 달려 돈목해변을 찾은 것은 산 한가운데 자리 잡은 거대한 풍성사구(風成砂丘) 때문이다. 파도와 바람이 억겁의 세월 모래를 끝없이 밀어 올려 만든 신비한 자연의 걸작을 보는 순간 탄성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압도당한다. 주민들이 ‘산태’라 부르는 모래 언덕은 높이 50m, 경사면 길이 100m, 경사도는 32∼33도에 달하며 동양 최대 규모다. ‘모래 서 말을 먹어야 시집간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마을은 모두 모래땅으로 이뤄졌다. 예전에는 밑에서 직접 걸어 올라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구 보호를 위해 오른쪽 숲길을 통해 사구 정상만 갈 수 있다. 정상에 서면 해변에 본 것보다 훨씬 거대한 모래 언덕이라 마치 사하라 사막에 선 듯하다. 급경사를 이루는 모래 언덕 너머로 방금 지나온 돈목해변과 돈목항, 도리산이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저 멀리 어락도까지 어우러지는 풍경은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사구 반대쪽은 성촌마을의 성촌해변으로 마두산과 고즈넉한 해변이 또 다른 수채화를 그린다. 우이도의 진정한 매력은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해안 절벽이니 놓치지 말기를. 섬사랑 6호를 잘 이용하면 힘들이지 않고 바다를 시원하게 달리며 우이도가 선사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질 수 있다. 공동산 아래 자리 잡은 띠밭넘어해변을 시작으로 등장하는 마두산, 성촌해변, 투구바위, 대물바위가 등 멋진 자연의 조각 작품은 먼 길을 달려온 고생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