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풍기가 돌아가기에 당연히 환기가 되는 줄 알았어요. 조리 중 뿌연 수증기와 연기가 가득 차서 답답했지만 급식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했습니다.”
지난 3월 14일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학교 급식실 노동자 A씨 증언이다. 서울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8년간 근무한 그는 최근 폐암 1기 진단을 받았다. A씨는 “학교 급식실 환기시설을 빨리 고쳐서 급식종사자들에게 죽음의 일터가 아닌 아이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주는 급식실이 되게 해달라”며 눈물을 흘렸다.
2021년 처음으로 급식실 노동자에 대한 산업재해가 인정되며 수면위로 올라온 ‘급식실 폐암’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급식종사자산재예방법이 발의됐지만 실제 통과까진 거쳐야 할 단계가 많다. 노조는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12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급식실 종사자의 폐암 산업재해가 처음으로 인정된 건 2021년 2월이다.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폐암으로 숨진 급식실 종사자 산업재해를 인정하며 “조리흄에 노출된 기간이 충분히 폐암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신청인의 상병은 업무상 요인에 의해 발병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급식실 폐암’을 이해하려면 ‘조리흄’을 알아야 한다. 조리흄은 고온의 조리기구에서 발행하는 유증기와 유해물질, 미세입자를 총칭하는 용어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조리흄을 폐암 위험요인으로 분류한다. 조리흄은 급식실에서 튀김이나 볶음, 구이요리를 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급식실 폐암 문제가 제기된 후 실시된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은 지난 3월 국회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에서 받은 검진 결과에 따르면 급식실 종사자 4만2077명 중 1만3653명(32.4%)이 폐CT에서 ‘이상소견’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10명 중 3명이 폐에 이상이 있다고 나온 것이다.
며칠 뒤 교육부가 낸 보도자료에도 비슷한 내용이 담겼다. 교육부는 전국 14개 시·도 교육청 급식실 종사자 2만4065명을 검진한 결과, 6943명(28.8%)이 폐에 이상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중 폐암 확진자는 31명(0.13%)이었고, 폐암이 의심되는 종사자도 139명(0.58%)이나 됐다. 최근 5년 급식실 종사자의 폐암 유병률은 10만명 당 135.1명으로, 국가 암 등록 통계상 유사 연령의 5년 유병률(122.3명)의 1.1배 수준이었다.
당시 교육부는 조리흄을 유발하는 튀김류는 주 2회 이하로 최소화하고 오븐 사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대체 식단과 조리법을 개발해 보급하겠다고 대책을 밝혔지만 현장에선 ‘부실 대책’이란 비판이 터져 나왔다. 급식실 종사자들은 1익당 식수인원이 많다보니 조리흄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 수밖에 없다며 1인당 식수 인원을 개선하고 조리흄 노출 작업시 1인당 최대 노출시간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엔 급식실 폐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도 발의됐다. 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급식종사자산재예방법은 급식실 종사자의 산재 예방을 위해 7년치 기본계획을 세우는 게 핵심이다.
이날 국회에선 급식종사자산재예방법 발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이윤희 본부장은 “지금도 현장에선 한 분 두 분 돌아가시는 분들이 늘어가고 있다”며 “오늘 발표한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 법안을 계기로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교육부가 성실히 사안 해결에 나서고 노동조합과 소통하길 촉구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