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받고 노동 착취’… 현장실습 악용 여전 [밀착취재]

자율형 학기제 등 임금규정 없어
대학생 노동력 부리는 기회 변질
전공 관련 없는 단순노동 하면서
돈 받기는커녕 실습비·식비 지출
교육부, 실습 학생 현황 ‘깜깜이’
“규제 없는 사각지대”… 폐지 목소리

“돈 주고 실습하면서 부조리하다고 느꼈지만, 실습이 졸업 요건이라 참고 다녔어요.”

인천 한 대학교의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윤모(21)씨는 지난해 7월 한 달 동안 복지관에서 현장실습을 했다. 그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했는데, 돈을 받기는커녕 되레 실습비 20만원을 냈다. 그는 “실습비에 식비가 포함된 거라면 이해하겠는데 밥도 바깥에서 사 먹어야 했다”며 “일을 해 주는 건데 무슨 명목으로 돈까지 받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대학생현장실습 대응모임 회원들이 12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실습비를 마음대로 줘도 문제 제기할 수 없는 현장실습제도에 대한 인권위의 정책권고를 촉구하고 있다. 윤준호 기자

직무수행 기회 제공을 목적으로 마련된 대학생 현장실습 제도가 실습 기관이 학생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부리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적잖다. 과거에도 이 같은 문제가 제기되자 2021년 교육부가 대학생 현장실습에서 불거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 운영규정’을 전면 개정했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12일 교육부에 등에 따르면 대학생 현장실습은 산학협력 교육과정으로 공공기관, 기업 등 실습이 가능한 기관이 학생에게 이론의 적용과 실무 교육을 실시하는 제도다. 주로 마지막 학기를 남겨 둔 학생들이 실무를 배우며 학점도 받기 위해 실습에 참여한다. 하지만 대부분 대학과 기관이 학생들에게 적정 수준의 실습 지원비를 제공하지 않아 ‘무급 인턴’ 논란을 부른 바 있다.

교육부는 2021년 운영규정 개정을 통해 “국가 차원의 표준화되고 일원화된 운영을 위해 (현장실습을) 표준형 현장실습학기제(표준형 학기제)로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규정을 보면 표준형 학기제를 채택한 실습 기관은 실습생에게 전체 실습 시간에 대해 최저임금의 75%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대학이 표준형 학기제가 아닌 자율 현장실습학기제(자율형 학기제)로 현장실습을 운영해도 무방하다. 자율형 학기제는 실습 시간을 줄이고 교육 시간을 늘리는 대신 실습비를 자율적으로 지급할 수 있다.

제도가 개선됐지만 허점은 여전하다. 충남 천안시 한 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재학 중인 송모(27)씨는 지난해 1월 한 업체에서 표준형 학기제로 계약서를 쓰고 일했다. 최저임금의 75% 이상을 받아야 하지만 송씨는 34% 수준인 일당 2만5000원을 받았다. 그는 “전공과 관련 있는 일이라면 몰라도 전선 피복 벗기는 단순 반복 작업을 하면서 계약서대로 실습비도 받지 못하니 버티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송씨는 표준형 계약서대로 실습비를 지급하지 않은 업체와 학교에 항의했지만, 학교는 계약서를 잘못 작성했다고 해명했다. 송씨가 참여한 실습은 자율형 학기제였는데 실수로 표준형 학기제 계약서로 작성한 것이니 실습비 지급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날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앞에선 이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대학생현장실습 대응모임은 “학교와 기업이 어떠한 규제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는 사각지대”라며 인권위에 자율형 학기제와 같이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현장실습 제도를 폐지 권고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교육부는 대학 재정 여건상 현장실습을 모두 표준형 학기제로 운영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표준형 학기제가 아닌 자율형 학기제 등으로 현장실습을 받으면서 최저 임금도 못 받는 학생들의 실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교육 비중을 높이는 대신 실습비를 적게 지급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임금을 주지 않으려고 선택한다”며 “자율형 학기제와 일경험수련 과정이 노동 착취를 정당화하는 제도가 됐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