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이달 초 MR(융합현실) 헤드셋 ‘비전 프로’를 공개하면서 정보통신기술(ICT)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MR나 VR(가상현실) 등 XR(확장현실) 기기가 확산할 경우 그를 뒷받침할 ‘콘텐츠’가 필요한데, 메타버스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메타버스는 최근 챗GPT와 같은 초거대 인공지능(AI)에 밀려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지만, 업계는 미래 가치가 있다고 보고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10명 중 1명 메타버스 경험… 활용도 다양
18일 업계에 따르면 메타버스는 VR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VR는 디지털 공간에 현실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가상으로 구축한 것이고 주로 혼자 이용한다. 메타버스는 VR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세계처럼 다른 대상과 함께 대화나 게임, 업무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다. 다중이 접속해 콘서트를 열고, 가상의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팔기도 한다.
◆국내 ICT 기업, 메타버스 개발·고도화
세계적으로는 마인크래프트나 로블록스가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 ICT 기업들도 메타버스 개발 및 고도화에 힘을 쏟고 있다.
대표적인 국내 메타버스 플랫폼은 ‘제페토’다. 네이버 손자회사인 네이버제트가 운영 중이다. 2018년 출시 후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전 세계 200여개 국가에서 서비스하고 있으며, 누적 이용자는 4억명을 넘었다. ‘잼’이라는 화폐를 이용해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꾸미고, 다른 사용자들과 실시간 채팅할 수 있다. 아바타를 움직여 가상의 ‘월드’를 이용한다.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며, 비대면으로 회의를 진행하는 기능도 있다.
제페토를 무대로 한 활동도 많아지고 있다. 아바타를 이용한 웹드라마가 제작되고, 가수들은 가상 팬 사인회를 연다. 구찌나 랄프로렌 등 해외 유명 뷰티·패션 브랜드도 제페토에 입점해 있다. 제페토 세계에서 아바타가 착용할 수 있는 의상 등 아이템이나 가상세계를 만들어 판매해 돈을 버는 크리에이터도 등장했다.
SK텔레콤은 2021년 ‘이프랜드’를 출시했다. 국내뿐 아니라 북미, 유럽, 중동, 아시아 등에서도 이용하고 있다. 오프라인 친구나 같은 관심사를 가진 가상공간에서 만난 친구 등과의 네트워크 형성 기능을 갖췄다. 나만의 공간인 ‘이프홈(if home)’을 꾸미는 재미도 있다. 4가지 지형과 6가지 건축물을 선택하고, 벽지나 바닥, 가구, 가전 등으로 취향껏 꾸밀 수 있다. 최대 31명까지 지인을 초대할 수 있다.
이프스퀘어는 최대 131명이 모일 수 있는 곳이다. 대규모 강연이나 이벤트 등 필요한 상황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지난달 남산서울타워와 LA 할리우드 산 등 국내외 명소를 이프스퀘어 추가했다.
KT는 지난 3월 메타버스 플랫폼 ‘지니버스’ 오픈베타 버전을 선보였다. KT의 아바타는 다리가 짧고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귀여운 느낌이다. 아바타와 지니홈, 지니타운을 꾸미고, 친구를 초대해 미니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를 즐긴다. 지니버스 특징 중 하나는 ‘AI 홈트윈’ 기능으로, 주소를 입력하면 메타버스 공간에 현실의 집이 그대로 구현된다.
KT는 최근 애플 비전 프로와 연계한 서비스 제공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LG유플러스는 연령별로 특화한 각각의 메타버스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월 0∼12세 어린이를 위한 ‘키즈토피아’ 오픈 베터 서비스를 시작했고, 4월에는 대학 전용 ‘유버스’를 출시했다. 키즈토피아 중앙광장에는 30종의 희귀동물을 옮겨놓은 동물원과 11종 공룡을 구현한 공룡월드가 있어 학습공간으로 유용하다. 유버스에서 학생들은 강의와 상담, 채팅, 축제 등 캠퍼스 생활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LG유플러스는 최근에는 직장인 특화 메타버스 서비스 ‘메타슬랩’ 체험단을 모집 중이다.
게임사들은 VR게임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1인칭 슈팅 게임(FPS) ‘크로스파이어’를 VR게임으로 확장한 ‘크로스파이어: 시에라 스쿼드’를 오는 8월 출시할 예정이다. 플레이스테이션 VR2에서 즐기는 게임으로, 4K HDR 고해상도 그래픽, 헤드셋 진동 등 실감 기술이 적용됐다. 스마일게이트는 앞서 2019년 VR게임으로 연애 어드벤처 ‘포커스온유’와 잠입 액션 ‘로건’을 내놓은 바 있다.
컴투스 자회사 컴투스로카는 VR 게임 ‘다크스워드’를 중국에서 출시했으며, 올해 글로벌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XR 게임 개발사 스코넥엔터테인먼트는 유캔스타와 협력해 개발한 XR 방탈출 게임 ‘이스케이프룸 온라인’의 글로벌 얼리엑세스(앞서 해보기)를 지난달 시작했다. 스코넥은 국방기술진흥연구소 지원을 받아 XR 기반 대공간 모의훈련 시뮬레이터를 개발하기도 했다. 가로·세로 15 크기 공간에서 최대 8명이 동시에 참여해 모형 총기를 조작하며 훈련할 수 있다.
◆정부 “메타버스 활성화” 올해 2233억 지원
정부는 올해 메타버스 산업 진흥에 2233억원을 투입하는 등 메타버스 산업 생태계 확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신성장 동력으로 가능성이 있기에 투자를 통해 세계 시장에서 주도권을 선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1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올해 메타버스 지원 예산은 2233억원이다.
정부는 지역 명소나 의료, 교육, 국방 등 일상생활·경제·산업분야에서 기존 플랫폼과 차별화된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 등에 680억원을 지원한다. 가상 현충원 구축, 헬스케어 및 교육 플랫폼 개발, 산업단지 고도화 등이 추진되고 있다.
재직자 역량 강화 교육과 융합대학원 운영 등 인재양성에 167억원을 투입하고, 기업 경쟁력 강화에 약 198억원, 실감콘텐츠 핵심기술개발 등 연구개발(R&D)에 65억여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가 지정한 메타버스융합대학원은 지난달 3개 대학원 등 총 5곳이다. 메타버스융합대학원에는 6년간 55억원을 지원한다.
선제적인 규제 혁신도 추진 중이다. 지난 3월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는 메타버스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때 시설 기준 적용을 예외로 하고, 현실 상표가 메타버스 플랫폼 안에서도 보호될 수 있도록 상표 관련 제도를 정비하며, 신원 확인 등 경찰업무에 증강현실(AR) 기기를 허용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다.
정부는 메타버스의 정의 및 정책적 지원 근거 등을 담은 ‘메타버스 산업 진흥법’(가칭)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말 정부는 메타버스 윤리원칙도 제정했다. 가상공간의 아바타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고려해 메타버스 참여자와 이해관계자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책임 있는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하는 자율규범이다. △온전한 자아 △안전한 경험 △지속가능한 번영 3대 지향 가치와 △진정성 △자율성 △호혜성 △사생활 존중 등 8대 실천원칙이 제시됐다.
가상세계에서도 현실에서처럼 타인의 불쾌감을 유발하거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하고 인종, 성별, 국적, 경제 수준, 정치·종교적 신념이나 신체적인 특징의 차이에 따른 차별이 없이 메타버스 접근과 이용을 보장한다. 창작물을 보호하고, 보상은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정부는 메타버스 윤리원칙을 구체화한 영역별 세부 실천윤리를 올해 제작해 보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