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누수 문제로 다투던 이웃 살해… 잔혹범죄로 번지는 이웃갈등 [사사건건]

서울 양천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30대 남성이 아래층에 사는 70대 여성을 살해하고 그 집에 불을 질렀다. 남성이 밝힌 범행 동기는 ‘이웃 간 다툼’이었다. 층간누수·소음 같은 갈등이 대화로 해결되지 못하고 잔혹범죄로 이어지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층간누수 불만” 이웃 노인 살해 후 방화 30대 남성 체포

 

18일 서울 양천경찰서는 이날 오전 12시22분쯤 강북구에 있는 모텔에서 양천구의 한 다세대주택에 불을 낸 피의자 정모씨를 검거했다. 정씨는 지난 14일 오후 9시43분쯤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3층짜리 다세대주택 2층에 홀로 거주 중이던 70대 여성 A씨 집에 찾아가 A씨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 혐의(살인·현주건조물방화)를 받는다. 정씨는 경찰 조사에서 “층간누수 문제로 다퉈오던 중 살해하고 불을 질렀다”고 진술하고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앞서 지난 14일 소방 당국은 오후 9시48분쯤 다세대주택 2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 15분 만인 오후 10시3분쯤 진화를 완료했다.

 

경찰은 화재 현장에서 숨진 A씨를 발견하고 시신의 상처 등으로 미뤄 A씨가 불이 나기 전 살해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같은 건물 3층에 사는 정씨를 용의자로 특정해 추적·검거했다. 경찰은 구체적인 범행 동기와 경위 등을 조사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공동주택 시한폭탄 ‘층간소음’…관련 민원 해마다 치솟아

 

아파트, 다세대 주택 등 공동주택의 또 다른 갈등의 핵은 층간소음 문제다. 층간·벽간 소음 갈등이 제때 해결되지 못해 이웃 살해 등으로 이어지는 충격적인 일은 이제 잊을 만 하면 나오는 뉴스가 됐다.

 

지난 16일 벽간 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던 이웃 주민을 살해한 20대 남성 A씨가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올해 2월24일 밤 10시쯤 자신이 살던 경기 수원시 장안구 원룸텔에서 옆집에 살던 40대 남성 B씨를 자기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가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무직 상태였던 A씨는 “평소 B씨와 벽간 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며 “범행 당일에도 원룸텔 복도에서 B씨를 만나 다투던 중 화가 나 그를 집으로 끌고 들어간 뒤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범행 직후 시신을 본인 집 화장실에 유기했다가 범행 이튿날 인근 파출소 방문해 “어젯밤 사람을 죽였다. 죄책감을 느낀다”며 자수했다.

 

지난 4월에는 전남 목포에서 층간소음으로 인한 다툼 끝에 둔기로 윗집 세간을 부수고 이웃까지 폭행한 C씨가 경찰에 체포됐다. C씨는 지난 4월1일 새벽 시간대에 자신이 사는 아파트 윗집에 들어가 쇠 파이프로 주방 가구를 부수고, 이웃 주민을 때린 혐의를 받는다. 그는 주말 밤 층간소음에 시달리다가 둔기를 챙겨 윗집을 항의 방문해 말다툼을 하다 이러한 행동을 범한 것으로 조사됐다.

 

층간소음 민원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 추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환경부 산하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의 민원 접수를 분석한 결과, 층간소음 민원은 2015년 1만9278건에서 2020년 4만2250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또 환경부에 따르면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전화상담 건수는 2012년 이후부터 2022년 11월까지 28만9425건에 달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반상회도 유명무실…“정부 시공 단계부터 해결 나서야” 

 

2019년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수도권에 거주하는 만 19세~59세 성인 1000명 대상 ‘현 거주지의 문제 및 반상회’ 관련 설문조사 실시 결과, 수도권 거주자 10명 중 8명은 현재 거주지의 실내 환경 및 주변 환경으로 인해 이웃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웃 간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층간 소음(40.4%, 중복응답)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흡연 문제(34.2%)와 주차 문제(23.7%)로 인한 갈등도 많았다. 그밖에 고성방가(23.2%)와 반려동물(15.4%), 쓰레기 방치 및 투기(13.3%)로 인한 갈등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 지역 협의체 역할을 하던 반상회는 그 역할이 크게 쇠퇴한 것으로 드러났다. 평소 반상회에 자주 참석하거나 중대한 사안일 때만 참석한다는 응답이 10명 중 2명도 채 되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은 건설 단계에서부터 이웃 갈등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 정비를 촉구했다. 경실련은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공동주택 신축 시 층간소음 전수조사 의무화 △층간소음 기준 초과 시 벌칙 강화 △‘라멘’(Rahmen) 구조 건축 의무화 등을 제안했다.

 

경실련은 “공동주택 입주자에게 층간소음 실측 소음도를 고지해 층간소음의 정도를 사전에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성능검사 기준에 맞지 않는 주택을 시공한 사업 주체에게는 과태료 부과와 준공검사 연기, 그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추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라멘 구조에 대해선 층과 층 사이에 보가 들어가기 때문에 층고가 높아져 분양 수익은 적지만, 천장에서 가해지는 진동이 보와 기둥으로 분산되기 때문에 층간소음이 낮아진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