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30)씨는 최근 어머니로부터 “청년도약계좌에 가입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들었다. 지인들이 청년도약계좌에 가입한 자녀에게 월 70만원씩 쥐여 주면 사실상 비과세로 돈을 증여할 수 있는 데다 고금리 이자 혜택도 받을 수 있다고 얘기해 줬다는 것이다.
김씨는 “엄마가 매달 70만원씩 넣어줄 수는 없고 35만원씩 반반 내자고 했는데 지금 상황에 월 35만원씩, 그것도 5년간 저축하는 건 무리라서 마음을 접었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적 형편이 되는 가정들이 자녀의 결혼자금을 마련해 줄 증여 수단으로 청년도약계좌를 이용하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5년 만에 5000만원을 모을 수 있는 ‘청년도약계좌’가 출시 4일 만에 가입자 30만명을 돌파하는 등 흥행하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 사이에서는 ‘부모찬스계좌’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청년들의 자산만 부풀려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청년도약계좌는 출시 4일 차인 이날 오후 2시까지 총 30만7000명의 가입자를 끌어모았다. 청년도약계좌는 6000만원 이하·가구 중위소득 180% 이하 조건을 충족하는 만 19∼34세 대상으로 최고 6.0%의 금리를 제공하는 정책금융상품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이자율은 소득에 따라 상이한데, 연간 급여 2400만원 이하인 청년이 매달 70만원씩 납입하면 납입액(4200만원)에 은행 이자(우대금리에 따라 534만∼640만원)와 정부 기여금·관련 이자(160만원)까지 더해져 만기 시 총 4894만∼5000만원을 수령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고금리와 비과세혜택을 누리기 위해 신청자가 몰렸지만 이 같은 흥행은 오히려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부르고 있다. 사회초년생 월급에서 한 달 70만원을 저축하는 것부터 어렵고, 청년 세대에게 5년의 시간은 너무 길다는 것이다. 결혼을 생각 중인 청년들 사이에서는 “결혼하려면 목돈이 필요할 텐데 5년간 돈을 묶어 둘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직장인 주모(28)씨는 “다른 적금을 정리하고 생활비를 아껴서라도 청년도약계좌에 가입할까 고민했다”며 “근데 이사도 가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해서 만기 5년을 채우기 전에 중도 해지하게 될 게 뻔해 포기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최모(30)씨도 “만기가 2년인 청년희망적금도 가입했다가 급하게 돈이 필요해져서 중도 해지했는데, 5년 만기를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청년도약계좌가 꼼수 증여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청년도약계좌는) 사실상 부모 돈 받고 살아서 월 70만원을 꼬박꼬박 낼 수 있는 청년에게 5000만원어치 증여세를 면제해 준다”는 글이 7700회 이상 공유되며 공감을 얻었다.
국무조정실이 지난 3월 발표한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를 보면 청년 1인 가구는 월평균 238만원(세전, 연평균 2856만원)의 소득을 벌어들인다. 이 중 식비, 월세, 세금 등 생활비로 지출하는 금액은 월평균 161만원이다. 평균치만 놓고 봐도 월 70만원 저축이 빠듯한데, 평균치보다 소득이 적거나 대출을 갚고 있다면 가용할 자금은 더 줄어든다. 정부가 홍보하는 ‘5년 안에 5000만원’을 받기 위해서는 소득이 연 2400만원 이하에 한도 70만원을 넣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모의 도움 없이 실현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