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를 둘러싼 안보 환경이 완전히 변했고 그래서 우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신청해 회원국이 되었습니다.”
1985년 11월 태어나 현재 37세인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 고별 연설에서 임기 동안 최고의 치적으로 핀란드의 나토 가입 성사를 꼽았다. 마린 총리는 최근 총선에서 그가 속한 사회민주당을 주축으로 한 연립여당이 원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며 약 4년 만에 낙마했다. 후임 총리로는 우파인 국민연합당의 페테리 오르포 대표가 선출됐다.
20일(현지시간) 핀란드 총리실에 따르면 마린 총리는 이날 내각 구성원들과 함께 대통령궁을 방문해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한테 공식 사의를 표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인 2019년 12월 출범한 마린 내각은 4년에 가까운 1289일 동안 집권했다.
마린 총리는 니니스퇴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한 고별 연설에서 “우리 정부의 목표는 사회, 경제, 환경 분야에서 지속 가능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며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요한 개혁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청년들을 위한 무상교육 확대, 새로운 기후변화법 제정, 탄소중립 사회로 가기 위한 로드맵 마련, 11만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 등을 주요 업적으로 제시했다.
마린 내각의 임기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과 거의 겹친다. 그는 전례 없는 감염병 사태에 정부가 적절히 대응함으로써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함은 물론 대유행 종식 이후의 회복 능력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분야는 역시 외교안보 영역이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핀란드를 둘러싼 안보 환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1939∼1940년 소련(현 러시아)과의 겨울전쟁에 패배한 핀란드는 국토의 약 10분의 1을 소련에 빼앗겼다. 그 여파로 사실상 소련 영향권에 편입되었고, 냉전 기간에도 소련과 미국 등 서방 사이에서 어정쩡한 중립을 지켜야 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고 지금도 러시아와 1300㎞ 넘는 국경을 접한 핀란드가 보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심각한 사안이 아닐 수 없었다.
마린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후 핀란드와 유럽의 안보 환경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다”며 “우리는 새로운 상황에서 핀란드의 운명을 결정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스웨덴과 함께 나토 가입을 신청하기로 한 결정은 대중의 강력한 지지와 의회의 합의에 힘입어 성사됐다”고 덧붙였다. 핀란드가 올해 4월 나토의 정식 회원국이 된 것을 임기 중 최대 업적으로 꼽은 셈이다. 마린 총리는 “러시아는 불법적이고 잔인한 전쟁에서 결코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며 “핀란드는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4세 나이에 국가 정상이 된 마린 총리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젊은 지도자’로 불리며 화제를 몰고 다녔다. 여성정치지도자회(WPL)는 최근 “21세기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유리천장을 깼다”며 퇴임을 앞둔 마린 총리한테 ‘개척자상(償)’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