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자폐 특성 있는 듯” 방송에…장애인부모연대 “편견 조장 마라”

정유정 자폐 성향 강조한 ‘그알’에 정신의학회 등 비판 잇따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화면 갈무리

 

또래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23)의 범죄 행태를 분석하며 자폐 성향이 있다는 전문가 발언을 내보낸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해 “근거 없이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잇따라 제기됐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는 21일 성명을 내고 “(해당) 방송에서 전문가를 인용해 피의자 정유정이 자폐 성향을 보인다고 보도한 사실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당사자와 가족을 대면해 심층적으로 면담하고 평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폐 성향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그 장애를 겪고 있는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큰 고통을 주고 사회적으로 편견을 심각히 조장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학회는 정신장애와 관련한 언론보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도 “발달장애인 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전날 성명을 통해 “장애는 개인의 반사회적 범죄를 규명하는 도구가 아니다. 단편적으로 언급되는 모습들에 대한 묘사만으로 평생에 걸쳐 나타나는 장애를 진단할 수도 없다”며 “방송의 목적이 ‘범죄자가 되기 쉬운 자폐 장애인’이라는 프레임을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무차별적으로 유포시킨 장애 낙인에 대해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도 ‘그것이 알고 싶다’ 측에 방송 정정 및 사과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김용직 한국자폐인사랑협회 회장은 지난 1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증거나 학술적인 근거는 물론 제대로 된 검증이나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편견일 수도 있는 말을 단정적으로 방송에 내보낸 SBS가 과연 존경받는 방송인지 매우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SBS를 향해 “다른 전문가들에게 얼마나 알아 보았나”라며 “자폐가 범죄성향이라고 보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화면 갈무리

 

앞서 지난 17일 ‘그것이 알고 싶다’는 ‘밀실 안의 살인자, 정유정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정유정의 범행을 자세히 다뤘다. 방송에는 정씨의 고등학교 동창들이 정유정에 대해 묘사하는 인터뷰와 함께 이에 대한 전문가 분석이 담겼다.

 

해당 방송에서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고등학교 친구들의 증언을 보면 정유정이 가지고 있는 그 성격의 맨 바탕에는 자폐적인 성향이 엿보인다”며 “모든 범행 과정에 슬리퍼만 신고 있다. 자폐 성향의 사람들이 신체 감각에 되게 예민하다. 타이트한 옷이나 이런 것들을 많이 불편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타인의 시선은 기본적으로 신경 쓰지 않는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독특한 말투와 걸음걸이가 있다”며 이런 것도 자폐적인 특성을 조금 고려할 수 있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잇따라 또 다른 심리학과 교수도 정씨가 자폐성 장애로 분류되는 아스퍼거 증후군일 가능성을 제기하며 “과외 선생님들한테 이야기하는 글로 쓰는 장면에서는 어색하지 않다. 본인이 원하는 것도 정확하게 물어보고 있었고 둘러댈 줄도 안다. 직접 대면했을 때 사회성이 더 떨어진다면 자폐 특성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방송은 전문가가 언급한 고기능성 자폐(아스퍼거 증후군)를 부각하며 해당 장애의 특성을 자막과 내레이션으로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자폐 성향이 범죄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분석도 있었으나, 상당 분량이 자폐 분석에 할애됐고 반복적으로 자폐 성향에 대한 인터뷰가 포함됐다.

 

한편 관련 단체들의 비판이 잇따르자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 측은 “자폐를 범죄와 연결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고 정씨에 대한 정보를 밝히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당사자들을 만나 소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