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노랑, 분홍 등 명쾌한 배경 위에 간략한 선으로 그린 까만 눈의 여인을. 일본, 미국, 프랑스, 홍콩 등 세계 곳곳에서 전시를 열어 열띤 사랑을 받고 있는 아마노 다케루(天野健)의 작품 ‘비너스(VENUS)’ 시리즈다.
다케루는 순수예술뿐 아니라 디자인 영역까지 섭렵하며 다양한 시각예술을 다루는 작가다. 1977년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갖가지 시각 체험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당시 일본은 만화(망가), 애니메이션, 게임 등 서브컬처가 본격 확산하는 시기였다. 미술계 또한 모노하 등을 통해 독자적 미학을 탐구하고 서구의 팝아트 등 선진 미술을 적극 수용하던 때다.
1997년, 스무 살에 그림을 배우기 위해 뉴욕 유학길에 오른 그는 3년 동안 판화나 스트리트아트에 매료되어 미국의 다양성 문화를 온몸으로 습득하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길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2000년 일본으로 돌아온 후, 그는 일반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여는 대신 색다른 공간에서 활동을 고집했다. 이처럼 기존 예술계의 엄격한 룰을 교란하는 행위는 지금도 방식을 바꿔가며 반복하고 있다. 그렇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그의 예술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 주는데, 사람들은 그의 이런 활동을 통틀어 ‘뉴아트(NEW ART)’라고 부른다.
이론가 리오타르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거대 담론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했다. 그는 “미래는 ‘거대한 서사’가 붕괴되고 ‘파편화한 작은 이야기들’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케루는 이를 감각적으로 캐치해 리드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하면서, 이를 통해 정치적이거나 종교적 메시지를 드러내기보다는 그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개인적 관계, 현실에 대한 이야기만을 다룬다는 점 또한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과거의 팝아트가 고급문화와 하위문화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것을 목적으로 출발했지만 결국 고급문화에 편입되어 갈 길을 잃은 것과는 다르게, 다케루는 그의 기반을 명확히 이해하며 이전 선배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는 진실로 젊은 세대 개개인의 취향과 환상을 존중하고 그것을 지표 삼아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가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비너스’ 시리즈 외에도 특이한 작품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비너스’처럼 간결한 선을 활용해 강아지나 레몬 등을 화면에 옮기기도 하고, 바로크 시대의 조형어법 중 하나인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를 연상케 하는 해골 등을 그리기도 한다.
최근 다케루는 회화 외에도 거대한 조각을 비롯해 대체불가토큰(NFT)까지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유명 아티스트의 CD나 LP의 재킷을 만들기도 하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 야마모토 요지와의 협업 등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활용한 의류 브랜드들과의 컬래버레이션도 진행한다.
다케루는 국내에서도 아트페어를 통해 이미 두꺼운 팬층을 형성한 작가다. 하지만 공식 개인전은 여지껏 한 차례도 없었다. 그 아쉬움을 부산과 서울의 갤러리가 달래고 나섰다. 부산 해운대 그랜드조선 OKNP 갤러리와 서울 신반포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7월16일까지 ‘아마노 다케루’ 전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관람객을 맞는다. 총 54점의 신작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