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현지시간) 오후 스웨덴 스톡홀름 도심 도로는 속속 모여든 자동차와 자전거들로 빼곡히 들어찼다. 한 시간 전만 해도 한산했던 도로는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직장인들 행렬이 줄을 이었다. 스웨덴 직장인들은 오후 3시가 다가오면 “아이를 데리러 간다”며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게 일상이다. 오전 7시 출근해서 오후 3시 퇴근하거나 오전 8시 출근해 오후 4시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많아 오후 3시30분이면 ‘러시 아워’가 시작된다는 전언이다. 부모가 출퇴근 시간을 조율해 한 명이 아이를 등교시키고 다른 한 명은 아이의 하교를 맡는 게 스웨덴 맞벌이 부부의 평범한 하루 일상이다.
스웨덴은 세계 최고의 성평등 국가로 통한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고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가정과 직장 내 성평등 정책을 펼친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닐스 오베리 스웨덴 사회보험청장은 “성평등을 목표로 한 사회 체계가 출산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자평했다.
지난해 스웨덴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52명이다.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0.78명)의 두 배 수준이다. 우리의 합계출산율은 1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 2018년 합계출산율이 ‘1명’ 밑으로 떨어진 뒤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스웨덴은 2020년 1.66명, 2021년 1.67명으로 1.6명대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소폭 하락했지만 다른 OECD 회원국의 합계출산율 등 세계적 추세를 고려하면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산율 지탱하는 일·가정 양립
스웨덴 정부는 이후 아이가 아프면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바바’(vabba·스웨덴어 돌보다 varda와 아이 barn의 합성어) 제도까지 도입했다. 아이 나이가 12세가 될 때까지 부모는 연간 최대 120일을 사용할 수 있다. 아이가 아픈데 부모가 일 때문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로프그렌 대변인은 “1950년대만 해도 아빠가 밖에서 일하고 엄마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며 “오늘날 ‘주부’는 여성에게 한정된 용어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가정 내 성평등 문화가 직장 내 성평등으로
여성의 육아 부담이 줄어들자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올랐다. 스웨덴의 성별 경제활동참가율 차이는 2021년 기준 4.1%포인트에 불과하다. 참고로 한국의 경제활동참가율 성별 격차는 18.1%포인트로, OECD 회원국 평균(10.9%포인트)을 한참 밑돈다.
스웨덴 여성의 고위직 진출도 활발하다. 올해 1월 기준 스웨덴 전체 장관 23명 중 11명(47.8%)이 여성이다. 국회의원 중 여성의 비율은 46.4%에 달한다. 스웨덴의 성별임금격차는 5%로 우리나라(약 31%)의 6분의 1 수준이다. 남녀 임금 격차는 노년기 연금 수령 격차로 직결되고, 부부 가운데 저소득자가 육아를 전담하는 구조로 이어지기 때문에 지금도 스웨덴 정부는 임금 격차를 줄이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마르틴 안드리아손 스웨덴 고용부 양성평등 차관은 “일·가정 균형을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보육 체계가 받쳐줘야 한다”며 “경험적으로 봤을 때 좋은 성평등 정책은 모든 부처가 협업했을 때 나온다”고 밝혔다. 스웨덴은 고용부 산하에 고용·통합 장관과 성평등 장관 겸 고용 차관이 같이 있다.
◆“남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육아 정책 내놔야”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발표한 ‘2023년 글로벌 성 격차 지수’에서 146개국 중 5위를 차지한 스웨덴은 남녀 차별을 없애는 데 지금도 열중하고 있다. 이미 성평등 사회를 이뤘다고 평가받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로프그렌 대변인은 “여전히 남녀 성별임금격차가 있고 남녀 건강격차도 있다”며 “여성은 3분의 1이 비정규직, 남성은 10%만이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의 불평등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매년 1.5명대의 합계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는 독일도 부모의 육아휴직을 보장해 일·가정의 균형을 도모해왔다. 2021년 기준 독일 합계출산율은 1.58명이다. 지난 5일 베를린 주정부 교육·청소년·가족부에서 만난 레기네 쉐펠스 가족정책과장은 “20년 전부터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었는데 출산율 제고에 가장 효과적이었던 건 부모수당 도입이었다”고 말했다.
독일에선 14주간의 출산휴가와 부부 합산으로 최대 3년의 부모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부모휴직 기간 중 12개월(최장 14개월)은 실질소득의 67%를 지급하는 ‘부모수당’을 받는다. 최대 월 1800유로(256만원)까지 받을 수 있고, 이전 소득이 없어도 300유로(43만원)를 지원받는다. 자녀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매달 250유로를 받는 ‘아동수당’도 부모에게 큰 힘이 된다. 한국의 경우 만 8세까지 월 10만원이 지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