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수능’과 ‘이권 카르텔’이 요즘 화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이주호 교육부 장관에게 “수십만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부적절하고 불공정한 행태”라고 격노하며 2024학년도 수능 9월 모의평가부터 초고난도(킬러)문항을 배제할 것을 지시하면서입니다.
대통령은 킬러문항의 구체적 예시도 들었습니다. ‘비문학 국어 문제’와 ‘과목 융합형 문제’가 그것입니다. ‘공교육 교과과정’(학교 수업) 수준 이상의 과학이나 수학, 경제 지식 등을 요구하는 지문이 계속 출제된다면 아이들은 사교육 업체에 기댈 수밖에 없고 이는 정시마저 부모의 지원 정도에 따라 결과가 좌우되는 ‘불공정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대통령의 인식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의 킬러문항 배제 지시 시점에 대한 의견은 갈리지만 대체로 교육계는 행정부 수반으로서 마땅히 지적했어야 할 문제 제기였다고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해마다 수능 시행계획을 발표하면서 “학생들이 학교교육을 충실히 받고 EBS 연계 교재·강의로 보완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힙니다.
공정성을 판단하는 잣대는 ‘기회’와 ‘과정’, ‘결과’의 형평입니다. 당장 킬러문항을 없앤다고 정시 결과가 정의로울까요? 물수능 판단 기준은 특정 영역 표준점수 최고점이 130점 중반 미만일 때라고 합니다. 평가원이나 교육부에서 줄 리 만무해 ‘사교육 업체’인 종로학원에 부탁해 2005학년도부터 2023학년도까지 자연계열 수험생들이 주로 선택하는 수학가형(통합수학) 표준점수 최고점 추이를 살펴봤습니다. 2015∼2020학년도 6년 연속 135점을 밑돌았더군요.
이 중 만점자가 6630명일 정도로 ‘역대급 물수능’으로 통했던 2015학년도의 경우 서울 강남 3구 소재 고교에서 정시를 통해 배출한 서울대 합격생을 추려봤습니다. 전체(958명)의 22.4%인 215명이었습니다. 통합수학 최고점이 147점으로 불수능이라고 불렸던 2022학년도 수능을 통해 서울대에 입학한 신입생 중 강남3구 출신 비율(22.1%)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입 성공을 위한 기회의 불평등함은 ‘초등학생 의대 진학반’이나 자사고나 특목고 강남 일반고 등 고교 서열화로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요. 과정의 불공정 역시 ‘부모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이란 우스갯소리가 웅변하고 있습니다. 최근 교육부 국장급 공무원으로부터 “교육부로 입직한 입장에서 한국의 교육 발전을 위해 ‘족적’은 남기려 한다”는 말을 듣고 ‘힘 없는 부처’ 교육부의 내공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불호령 일주일여 만에 교육부가 내놓은 ‘최근 3년간 수능 및 지난 6월 모평 소위 킬러문항 사례’를 보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당 문항 정답률이나 표준점수 분포 같은 객관적 통계 대신 “이 문제가 어렵더라”는 언론사들 보도라니요.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제발 교육부가 대통령실 대신 국민들만 바라보고 정책을 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