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지명된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과거 ‘북한 체제 파괴’나 ‘김정은 정권 타도’와 같은 대북 강경 발언을 해 온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학자로서 견해인 데다 현재 남북 대치기라고는 하지만, 그의 인식이 남북대화와 교류가 주 임무인 통일부의 수장에 걸맞으냐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일각에선 김 후보자의 과거 발언을 모를 리 없는 윤석열 대통령이 그를 통일부 장관에 기용함으로써 향후 통일부는 대북협력보다는 대북압박에 무게중심을 두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인 김 후보자는 최근 수년간 언론 기고문이나 자신의 유튜브 채널 영상 등을 통해 북한체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2019년 2월 인터넷매체 ‘펜앤드마이크’에 기고한 글에서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북한 전체주의 체제 파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4월 기고문에서는 “김정은 정권이 타도되고 북한 자유화가 이루어져서 남북한 정치 체제가 ‘1체제’가 되었을 때 통일의 길이 비로소 열리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극도로 경계하는 ‘체제 전복’(Regime Change)을 통한 흡수통일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그는 또 이달 초 자신의 유튜브에 게시한 영상에선 “한국과 미국은 북한과 대화에 기대를 걸기보단 이 교착상태를 활용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더욱더 강력한 억제체제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통일부 홈페이지에 있는 과제 목표 중 하나로 제시된 ‘대화를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상호주의와 실사구시적으로 공동 이익 실현’과는 괴리감이 있는 발언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서도 적대감을 드러냈다. 2019년 5월 같은 매체 기고문에서는 미국의 대북 제재 움직임을 소개하면서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에서 미국의 입장 변화 시한으로 정해 둔 올해 연말이 김정은 자신의 사망 선고일이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올해 1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게시한 영상에서는 김정은과 북한 군부가 “임시적 협력체제”를 맺고 있을 뿐이라며 “북한 내부 상황이 악화할 경우 언제든 군부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후보자는 기존 남북 간 합의와 관련해서도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기고문에서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에 대해 “실현 가능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선전·선동에 완전히 놀아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문재인 정권의 2018년 ‘9·19 군사분야 이행합의’에 대해서는 “미국의 군사력을 무력화시키려는 ‘반미친중’ 정책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비판했고, ‘4·27판문점 선언’은 “민족공조론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자는 다른 영상에서는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1년 12월 채택된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에 대해 “대한민국에 오히려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윤석열 정부에 파기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안들은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의견이 엇갈릴 수 있으며, 김 후보자도 학자로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통일부 장관으로 적임인지는 다른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 후보자의 견해는 윤석열 정부의 ‘흡수통일을 지향하지 않는다’거나 ‘남북 간 모든 합의를 존중하고 이행해 나간다’는 입장과는 상당한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윤석열 정부가 남북관계 재정립을 추구하고 인권문제 등 북한을 압박하려 한다는 점에서 김 후보자가 ‘달라진’ 통일부 수장으로 제격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외교부 인권대사를 지낸 김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유튜브에 게시한 영상에서 “평화통일의 궁극적인 목표는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다”며 북한 인권 문제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아울러 북한 인권 개선이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고 북한인권재단의 조속한 출범을 촉구하기도 했다.
한편 김 후보자는 2019년 7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이 쓴 ‘반일종족주의’ 북콘서트에서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