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폭탄에 전국 곳곳 피해 발생… 실종 수문관리원 숨진 채 발견

이천선 수영하던 고교생 사망

담벼락 무너지고 도로 마비사태
서울선 남산 1호터널 한때 침수

서울·경기 반지하 침수 잇따라
2022년 악몽 재연 우려 목소리

지난해 8월 폭우 이후 가장 강력한 물폭탄에 전국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장마가 종료된 뒤에야 통계가 나오겠지만, 수해 대비가 여전히 미흡해 피해가 속출할 개연성도 크다.

 

장마가 이어진 29일 주택이 침수되고 차량 파손이 잇따랐다. 올해 첫 장마 피해 사망자도 나왔다. 지난 27일 실종됐던 전남 함평군 수문관리원이 이날 숨진 채 발견됐고, 경기 이천의 하천에서 수영하던 고교생이 생을 달리했다. 하룻밤 사이 한 달치 강수량이 쏟아졌던 남부지방에는 30일 다시 많은 비가 예보돼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 28일 전남 함평군 엄다면 하천에서 소방특수구조대원이 전날 밤 폭우 피해를 막으려다가 실종된 수리시설 감시원을 찾아 수중 수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남소방본부 등은 이날 오전 10시37분 전남 함평군 엄다면 한 펌프장 교각에서 숨져 있는 오모(67)씨를 발견했다. 오씨는 지난 27일 폭우 피해를 막으려 밤중에 하천변으로 나섰다가 실종됐다. 펌프장 일대를 수색한 소방 특수구조대는 실종 지점에서 1㎞가량 떨어진 교각 아래 수풀에 걸려 있는 오씨를 발견했다. 오씨는 지난 25일 시작된 올해 장마로 인한 첫 인명 피해 사례다.

 

오씨는 지난해부터 농어촌공사가 위촉한 수리시설 관리원으로 활동해 왔다. 실종 당일 저녁 오씨는 장대비에 하천물이 불어나자 수문 점검을 위해 남편과 엄다천으로 나갔다. 굵은 빗줄기와 어둠으로 수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손전등을 가지러 자리를 비웠고, 그 사이 오씨가 수문 주변 부유물을 제거하다가 불어난 하천물에 휩쓸린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 이천에서는 29일 청미천 장호원교 인근에서 수영하던 17세 남학생이 숨졌다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밝혔다. 이 학생은 오후 2시55분 실종돼 오후 3시32분 의식과 호흡이 없는 상태로 발견됐다.

 

이날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곳곳에 집중호우가 내렸다. 충남 서산시엔 오후 2시3분부터 오후 3시3분까지 1시간 동안 61.2㎜ 비가 쏟아졌다. 강원 춘천시와 충남 태안군도 1시간 강수량이 61.0㎜에 달했다. 폭우로 주택이 침수되고 도로가 마비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수도권 전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29일 서울 청계천 인근에서 우산을 쓴 시민들이 도로를 건너고 있다. 남정탁 기자

◆집 잠기고 나무 전복… 전국 피해

 

서울에서는 반지하 침수와 빗물 역류가 연이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반지하주택에는 낮 12시49분 역류한 빗물이 들이쳤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지하1층·지상2층짜리 단독주택 지하에도 오전 11시28분 빗물이 역류했다. 서대문구 서대문경찰서 교통정보센터도 오전 11시10분쯤 앞 도로에서 넘친 물이 밀려들었다. 이로 인해 고정형 무전기·무전시설이 일부 고장났다.

쓰러진 나무 29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아파트 인근에 세워진 승용차 위로 장맛비를 견디지 못한 나무가 쓰러져 있다. 전북소방본부 제공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 맨홀에서는 오전 11시17분 빗물이 역류했다. 비슷한 시각 남산1호터널 한남대교 방향 도로가 침수됐고, 오전 11시50분쯤 서울 강남구 상록회관 인근 도로가 물에 잠겼다.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한 주택은 이날 오전 10시30분 폭우로 침수됐다. 인천 남동구 간석동 한 빌라에서는 오전 10시20분 벽돌로 된 담벼락이 무너졌다.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빌라 공동 출입문 유리 등이 파손됐다. 맨홀이 열리는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인천 미추홀구 문학동에서 이날 오전 10시52분, 인천 계양구 작전동 도로에서 오전 11시19분 각각 맨홀이 열렸다. 폭우 때는 내부 압력을 못 이겨 맨홀 뚜껑이 열리면서 사람이 빨려들어가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경기도에서는 광주시 등의 반지하주택 6가구가 물에 잠겼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의 한 공장은 이날 오전 10시55분 침수됐다. 경기 양주시 장흥면의 한 창고 입구에서는 오전 10시40분 나무가 쓰러졌다.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과 진건읍에서는 오전 11시45분 가로수가 도로로 넘어져 통행에 불편을 겪었다.

 

빗길 교통사고도 발생했다. 이날 오전 9시20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자유로 장항 IC 인근 도로에서 빗길에 승용차가 미끄러져 가로수를 들이받았다. 사고 여파로 차에서 불이 나 15분 만에 꺼졌다. 운전자는 바로 탈출했다.

 

충남에서는 태안군 태안읍 서부시장 상가와 편의점, 단독주택 주차장 등 6곳이 침수됐다. 충남 안면읍 창기리에서는 나무가 도로로 쓰러졌다. 광주 서구 화정동 한 도로에서도 이날 낮 12시30분 낙뢰를 맞은 가로수가 인도 쪽으로 쓰러져 차량 2대가 파손됐다. 경북에서는 이날 오후 6시 52분 안동시 옥동의 한 주택이 배수불량으로 침수되는 등 주택침수 10건이 발생했다. 전북 군산시와 전남 여수시에서는 일부 도로가 물에 잠겼다. 강원도에서는 춘천시 사북면 한 건물과 화천군 하남면 한 지하실이 침수됐다. 강원 원주시 소초면과 양구군 양구읍 도로에서는 나무가 쓰러졌다.

 

중대본은 이날 오후 6시 기준 북한산, 무등산 등 국립공원 12곳 322개 탐방로, 둔치주차장 71곳을 통제했다. 여객선은 백령∼인천, 군산∼어청도 등 11개 항로에서 15척이 결항했다. 지난해 폭우로 8명의 인명 피해를 본 서울시는 이날 장대비가 쏟아지자 시내 27개 전체 하천의 출입을 통제했다.

침수된 주택 서울 관악구 은천동 주택가에서 한 시민이 오전에 내린 폭우로 인해 침수된 가게 바닥을 청소하고 있는 모습. 이 건물은 지난해 여름에도 폭우로 침수됐다. 뉴시스

◆반지하 수해 대비 여전히 취약

 

기상청은 30일 상대적으로 남부지방에 강한 비가 집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남부지방은 30일 낮까지, 제주도는 30일 밤까지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30~60㎜의 많은 비가 쏟아지겠다고 밝혔다.

 

7월 한 달치에 달하는 폭우가 하룻밤 만에 내렸던 남부지역은 다시 많은 비가 예보돼 대비태세를 강화했다. 앞서 광주에는 지난 27일 오후 4시부터 이튿날 오전까지 274㎜의 물폭탄이 쏟아졌다.

 

장마 닷새 만에 전국적으로 피해가 이어지면서 수해 대비 태세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반지하가구 등 침수 취약가구의 대비는 여전히 더딘 것으로 파악됐다. 이대로면 지난해 여름 겪은 악몽을 또다시 되풀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국회부의장)이 행정안전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6년(2017~2022년)간 전국 주택침수 피해 가구는 6만2189가구에 달했다. 이 중 3분의 1이 넘는 2만1351가구가 서울에 집중됐다. 경기 1만1145가구, 경북 8466가구, 인천 5247가구로 뒤를 이었다.

연일 장마가 이어지고 있는 29일 전북 전주시 효자로에 거센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 뉴시스

행안부는 전국 반지하주택을 조사해 3만704가구를 침수방지시설 설치대상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지난 20일 기준 설치가 완료된 곳은 1만150가구에 불과했다. 설치 예정인 가구가 1만723가구, 미설치가 9827가구였다. 약 2만가구가 여전히 침수 피해에 제대로 대비되지 못한 실정이다.

 

물막이판 등 침수방지시설이 설치되면 미관상 좋지 않고, ‘침수되는 집’이라는 이미지가 생겨 집값이 내려갈 것을 우려해 집주인들이 설치를 원치 않는 경우가 잦다고 행안부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