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7년 5월 이후 2022년 4월까지 총통화(M2 평잔 기준)가 1226조원 증가하면서 단군 이래 최대의 유동성이 공급됐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영끌’이란 단어도 생겼다.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신용이 세계 최악의 상황이 됐다. 천문학적인 돈만 푼 것이 아니라 국가채무도 400조원 이상 증가했다. 이른바 자전거 경제가 됐다. 경제 성장률은 낮아지고 돈을 풀지 않으면 경제가 돌아가지 않았다. 과거 정권의 정책 실패가 지금의 문제를 만들어 냈다는 주장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현재 거시정책의 기조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 정책이다. 디스인플레이션이란 물가는 상승하지만, 물가상승률은 떨어지는 현상이다. 사람들은 기준금리를 올리고 긴축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돈은 계속 풀렸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수입 물가는 달러 기준 15.9%나 하락했음에도 소비자물가가 3.3% 증가했다.
돈을 풀어도 기준금리 인상은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기 마련이다. 금융 기관은 단기로 자금을 조달해 장기로 대출해 주는 기관이다. 금리가 상승하면 금융 기관은 자산과 부채의 기간 불일치를 줄이려 하고, 이 과정에서 자금 경색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대규모의 국고채와 한전채 발행으로 금융시장은 더 어려워졌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연체율이 상승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부동산 관련 대출이 부실화한다.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금융시장이 관리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위험 요인은 해결되지 않았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계부채 규모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고, 올해 1분기 판매신용도 전년 동기에 비해 6.2%나 증가했으며, 주택담보대출은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다. 물가는 상승하고 경제 성장이 둔화하면서 저소득층의 고통은 가중됐다. 한국은행은 가계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보다 많은 사람의 수가 175만명이고, 소득 대비 원리금상환비율(DSR)이 70% 이상인 사람의 수가 299만명이나 된다는 자료를 발표했다. DSR 규제의 그림자다.
현재 문제가 되는 부동산 PF와 비은행 금융 기관의 부실 가능성도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더욱이 2020년 4월 이후 자영업자들에 대한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가 끝나는 9월에는 금융시장에 상당한 어려움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 해결의 출발은 물가 안정을 위한 금리 정상화다. 현재 기준금리 수준이 물가상승률과 부동산 투자 수익률에 견주어 낮은 수준이다. 한국부동산원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오피스 투자수익률이 6.7%이다. 실질 금리가 매우 낮은 상황에서 빚을 지는 것이 유리한데 누가 빚을 갚겠는가. 한국은행의 주택가격 소비자심리지수가 지난 6월 100을 기록했다. 빚을 내서 집을 사려는 수요는 잠재돼 있다.
디스인플레이션 정책 기조 하에서 인플레이션은 장기화한다. 경제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저신용자의 가계부채 문제는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저신용자들의 신용 회복을 위한 대책과 부실 채권 매입을 위한 공적 자금의 준비가 필요하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 위험을 거의 부담하지 않는 은행권은 대박이 났다. 은행권의 과보호로 서민들은 비싼 이자를 내는 비은행권으로 내몰렸고, 위험은 비은행권으로 집중됐다. 은행권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등 경쟁을 촉진하는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 PF 부실 위험을 안고 있는 비은행 금융 기관에 대해서는 부실 징후가 있는 자산의 조기 인수 등을 통해 선제적으로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 규제의 풍선 효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권과 비은행권의 규제 차이를 줄여 나가야 한다. 위험 부담 능력이 없는 금융 기관이 더 많은 위험을 안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 전세보증금 DSR 규제는 완화하고 다른 대출의 DSR 규제도 금융 기관의 자율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 서로 얽혀 있는 신용 위험의 원인은 일자리다. 근본적으로 일자리가 있어야 서민들이 빚의 노예로 추락하지 않는다. 전면적 규제 혁신을 통해 성장 동력을 다시 찾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