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보다 더 죽을 맛”… 바가지에서부터 최저임금인상까지

“코로나 때보다 지금이 더 죽을 맛입니다.”

 

서울 구로구에서 소규모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최저임금이 부담스러워서 지난달에 매장내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내고 키오스크(무인주문기)로 주문 시스템을 바꿨다. 그는 최근 최저임금이 1만2000원대로 오를 수 있다는 소식에 “주방 아주머니가 두 분 계시는데 이런 분들은 바꿀 수도 없다”며 “최저임금이 더 오르면 한 분으로 줄이든지, 더 큰 적자를 안고 식당을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사진=뉴시스

코로나19 엔데믹으로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였던 자영업자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바가지 논란으로 해외관광객에게 비판을 받는 상인에서부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벌써부터 피해를보고 있는 어시장까지 상점가는 연일 울상이다. 여기에 최저임금마저 오를 가능성이 커지면서 자영업자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겪은 경제적 어려움에서 회복되지 않은 영세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은 여전히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지난 5월 경북 영양 산나물 축제에서 옛날 과자 한 봉지(1.5㎏)를 7만원에 파는 장면이 지상파 TV를 통해 공개되면서 점화된 바가지요금 논란은 이제 지역축제를 넘어 서울 상권마저 위협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필수 투어 코스인 서울 명동 일부 점포에서는 군만두 3개에 5000원, 붕어빵 4개에 5000원으로 가격이 책정돼 논란이 일었다. 오징어구이는 1만2000원, 회오리 감자는 5000원으로 고속도로 휴게소보다 2000원씩 더 비싼 수준이다.

 

이를 두고 일부 관광객 사이에서는 한국에 또 방문하더라도 명동에는 다시 오고 싶지 않다는 반응도 나온다고 한다. 실제로 유튜브 등에서는 명동에 대한 외국인들의 부정적 반응이 공유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에게 바가지요금은 부정적인 인식을 줄 수밖에 없다. 특히 피해 사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퍼지면 지금까지 K컬쳐로 쌓아 올린 관광한국 이미지가 무너져내릴 수도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 관광 명소인 명동에선 일부 바가지 논란을 일으킨 노점상들 때문에 다른 상점이 피해를 보진 않을까 우려한다. 명동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관광객 상대로 하는 장사라 물가가 일반 시장보다 비싼 편이긴 하다”면서도 “구청에 매달 100만원 이상 도로점용료를 내고도 수익은 충분히 내는 장사”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엔 유튜브나 SNS에 가격 등 자세한 부분까지도 소개가 되다 보니 괜히 관광객들이 줄어 타격을 입진 않을까 우려하는 사장님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논란은 수산업자와 어시장 상인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경북 포항에서 대게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수산업자 이모씨는 “단순히 수산시장 상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현지에서 생물을 거래하는 우리 같은 업자들에서부터, 각 지역에 배송하는 운송업자들, 해산물 시장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의 생계가 달린 문제”라며 “오염수 괴담이 퍼진 상황에서 방류가 시작되면 다 죽으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날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에 안전성 문제가 없다는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당장 8월부터 방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수산시장 상인들은 “안 그래도 오염수 괴담 때문에 손님이 줄었는데 매출이 더 떨어지게 생겼다”며 우려를 하고 있다. 특히 원래 수산물 비수기인 여름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논란까지 겹치면서 수산시장 상인들은 고통을 토로한다. 

 

이런 자영업자 고통은 수치로 나타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시장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음식점업, 숙박업 등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40.8%가 3년 내 폐업을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폐업을 고려하는 이유로는 영업실적 지속 악화(29.4%), 자금 사정 악화 및 대출상환 부담(16.7%) 등이 꼽혔다. 

자영업자 폐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지급된 노란우산의 폐업 공제금은 554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6.4% 증가했다. 노란우산 폐업 공제금은 가입자가 매달 일정한 금액을 납입하면 폐업 시 일시금 또는 분할금 형태로 공제금이 지급되는 중기중앙회의 소상공인 지원제도다.

 

폐업 시 대출금을 갚을 길이 막막하다는 응답(8.3%)도 있었다. 조사 대상 자영업자의 평균 대출금액은 약 8300만원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나서서 각종 지원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자영업계 앞날엔 더 큰 산이 놓여있다. 바로 최저임금 인상이다. 현재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두고 최저임금위원회에선 1만2130원을 주장하는 노동계와 9650원을 제시한 경영계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일 최저임금위원회의 제10차 전원회의에서 근로자위원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올해 적용된 최저임금의 물가가 낮게 잘못 예측되면서 최저임금의 낮은 인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경기침체 상황에서 노동계의 주장대로 최저임금을 고율 인상하면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의 생업은 존폐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제11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를 앞둔 5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2023년 시간당 최저임금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최근 5년간 전년 대비 최저임금 인상률은 △2019년 10.9%(8350원) △2020년 2.9%(8590원) △2021년 1.5%(8720원) △2022년 5%(9160원) △2023년 5%(9620원) 등이었다

 

최근 인건비 부담으로 아들과 밤낮으로 번갈아 편의점을 운영 중인 김모씨는 “지금도 인건비 때문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여기에서 최저임금을 더 올리면 우리 같은 영세 자영업자들은 그냥 죽으라는 것”이라며 “식당은 그나마 키오스크라도 들이면 되지만 우린 어떡하느냐”고 반문했다.

 

편의점주들만의 고민은 아니다. e스포츠 행사를 대행하는 기획사를 운영하는 강모씨는 “지난해엔 경기가 안 좋아 대표인 나보다 직원이 가져가는 월급이 많았다”며 “작은 행사라도 10여명의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한데 이렇게 가파르게 인건비가 인상되면 결국 사업하는 사람들만 죽으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