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사라진 아기’ 숫자가 하루가 멀다고 늘고 있다. 지난달 ‘냉장고 아이 시신’ 사건을 계기로 출생 미신고 영아 2236명을 전수조사하면서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어제 출생 미신고 아기 사건 420건을 접수해 400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전날까지 193건이던 숫자가 하루 만에 두 배로 껑충 뛰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이렇게 많은 아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전수조사를 통해 우리 사회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어제까지 전국에서 사망이 확인된 영아만 15명에 이른다. 부산에서는 2015년 2월 출산한 아기를 집 주변 야산에 유기한 친모가 적발됐다. 이 친모는 아이가 생후 8일 만에 집에서 갑자기 숨지자 범행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는데, 사체유기죄 공소시효가 7년이라서 아예 처벌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청주에선 2016년 아기를 낳은 뒤 인터넷을 통해 제3자에게 넘기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회 전체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자칫 묻힐 뻔한 이 사건도 보육원에서 20여년간 일한 간호사가 B형간염 접종 기록이 없는 아기들에 대해 의문을 갖고 감사를 청구하면서 알려졌다. 15년 전부터 국회에는 분만을 담당한 의료기관이 지자체에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법안이 제출됐으나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었다. 이번에 이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면서 국회는 지난달 30일에야 출생통보제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의료기관에서 태어난 아기가 출생기록에서 누락될 가능성은 없어졌지만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출생 신고를 꺼리는 미성년자나 미혼모가 의료기관을 찾지 않고 숨어서 아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예 불법 낙태의 길로 내몰 수도 있다. 산모가 익명으로 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호출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어제 범정부 차원에서 제도 개선을 위한 1차 회의가 열린 만큼 도입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물론 보호출산제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자칫 산모의 양육 포기를 부추기고 아이가 나중에 커서 자신의 뿌리를 찾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문제까지 다각도로 검토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태어난 생명을 제대로 키우는 건 개인만의 몫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