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진미 강원집
6월, 한창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할 때쯤 오랜만에 남대문을 방문했다. 레스토랑에 사용할 새로운 접시를 사기 위해서다. 남대문 D동 상가 3층에는 레스토랑용뿐 아니라 집에서도 사용할 만한 다양한 접시들이 많이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접시를 구경하다 점심시간이 되면 맛있는 냄새가 온 시장에 진동한다. 역사가 깊은 남대문엔 내로라할 맛의 유명한 가게들이 포진해 있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갈치조림 골목부터 칼국수 골목 등 오래된 탕집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데 그중 내가 남대문에 갈 때마다 방문하는 곳은 바로 갈치조림 골목의 초입에서 무려 60여년 동안 한자리를 지킨 노포인 ‘닭진미 강원집’이다.
진미 닭곰탕 집은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1층은 자리가 꽉 차서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세월을 느낄 수 있는 인테리어와 집기들이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다. 관광객들에게도 많이 알려져서인지 외국인들이 꽤 많았다. 북적거리던 1층과는 다르게 창가 햇살 가득 들어오는 2층은 60년대에 문을 열었던 그때를 간직한 채 채광에 연지를 찍은 듯한 놋그릇들과 함께 푸근하게 반겨주고 있었다.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는다. 관광객들의 낯선 이국의 말들을 들으며 오래된 가게에 앉아 있는 이 느낌이 참 묘하고 설렌다. 곧 닭곰탕이 나왔다. 팔팔 끓는 양은냄비에 실파 숭덩숭덩 썰려있는 닭곰탕이다. 기름이 좔좔 도는 그 모양에 매번 방문할 때마다 변치 않는 이곳의 느낌과 맛이 좋다. 어떨 때는 그립기까지 한다.
60년 역사가 깊은 이곳은 사실 내 추억보단 장인어른의 추억이 서려 있다. 시골에서 상경해 직장을 다니던 시절, 점심시간을 쪼개 닭곰탕 한 그릇으로 몸을 보신했던 그때에, 양도 많고 저렴했던 ‘닭진미 강원집’의 닭곰탕은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 자식에게 사위에게 손자에게 이야기해줄 음식점이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인 거 같다.
#닭곰탕
진미 닭곰탕은 큰 닭을 쓴다. 큰 닭을 일반적으로 노계라고 칭하지만 노계가 정말 늙은 닭이 아니라 조금 많이 성장한 큰 닭을 노계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정말 늙은 닭을 칭하기도 한다. 우리는 영계라고 해서 덜 자란 작은 닭으로 삼계탕을 끓여먹는 걸 선호해서 닭을 이렇게 오래 키우질 않는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오래 산 닭을 노계라고 표현하며 상품성에 한계를 둔다. 노계는 껍질이 두껍고 질겨 오래 삶아야만 부드럽게 먹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국물을 내기에 아주 적합하다.
양은 그릇엔 닭다리 하나, 잘게 찢은 가슴살, 껍질이 들어있다. 이 맑은 닭곰탕을 보고 있자면 노계를 떠올리면 으레 생각나는 누린내가 하나 없다. 잡 냄새 하나 없는 국물을 한입 떠 먹어본다. 뜨끈한 기운이 내 몸 속을 휘젓고 지나간다. 한입 먹어본 맛이 살짝 싱거워 소금을 쳐본다. 그렇게 두 번이나 소금을 더 쳤는데도 오히려 간이 맞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이 깊은 감칠맛에 혀가 무뎌진 탓이었다. 이 감칠맛의 여운은 한동안 오래 가는데 입안 가득 기름이 돌아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그 맛이 그리워진다.
닭곰탕은 소고기로 만들었던 곰탕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닭을 사용해 만든 것에서 유래되었다. 곰탕들의 특징인 고기를 한 솥 끓여 국물을 낸다는 점에서 볼 때 닭곰탕은 소 곰탕에 비해 더 서민적이라 볼 수 있다. 곰탕은 냉장고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색이 탁해지고 향이 옅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가마솥에서 한 솥 끓이고 또 추가해 가며 계속 끓이는 방식으로 맛을 내는 것이 좋은데 곰탕집들이 가게 구석 솥에서 곰탕을 끊임없이 끓여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골들이 많고 손님이 계속 유입되어야만 곰탕 집은 살아남을 수 있고 그곳은 맛집이 된다. 그래서인지 곰탕 집들은 기본 30∼40년 된 노포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