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주둔하는 미군에 타국군을 증강하는 사례는 주한미군의 카투사(KATUSA)뿐입니다.”
사단법인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 최진택 회장은 9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과거 6·25전쟁에 참여했고 현재도 전쟁 억제력의 핵심인 미 2사단을 비롯해 미8군에는 여전히 2400여명의 카투사 병사가 배속돼 있다. 전문통역병처럼 미군과 소통하는 병사가 아니라 함께 전투를 치르는 카투사가 존재한다는 것은 6·25전쟁 당시 피로 맺은 관계인 한·미동맹의 상징과도 같다는 게 최 회장의 설명이다.
카투사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15일 창설됐다.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군이 낯선 한반도의 지리나 기후, 언어 장벽 등으로 전쟁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막고자 한국군과 같은 부대에서 함께 싸우게 한 것이다. 세계일보는 카투사 참전용사 김재세(95)씨의 사례를 통해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미 2사단에 배속돼 낙동강 전투부터 전선에 뛰어들었던 카투사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전까지는 일본에서 훈련을 받은 뒤 미 7사단에 배치돼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313명을 ‘카투사 1기’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김씨처럼 한반도 전체가 적 수중에 들어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미군 옆에서 싸운 한국군이 있었던 것이다.
최 회장은 “현재도 6·25전쟁에 참전했던 유엔군 및 전역한 주한미군에 대한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미 워싱턴 참전용사 기념공원 내 설치된 ‘추모의벽’에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 전사자 3만6634명은 물론 한국인 카투사 전사자 7174명의 이름을 새길 때도 카투사연합회가 5만달러 넘는 기금을 마련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미군의 전쟁 기념시설에 외국군 이름이 새겨진 것은 카투사가 처음으로, 이들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역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생존해 있는 카투사 참전용사들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고 했다. 최 회장은 “현재 13분만 살아계시는데 전쟁 당시 부상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고 홀로 외롭게 살고 계신다”며 “특히 한동안 미군에 배속되었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기록에 남아있지 않아 참전유공자로 인정받지도 못한 경우도 많다. 미국에서 은성훈장을 받았던 박태환 선배님도 한국에선 오랜 시간 보훈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제대로 된 예우를 못 받으셨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카투사는 한·미 역사의 교집합이며 인적교류를 통해 양국 관계를 발전시키고 결속시킬 수 있는 존재”라며 “앞으로 근무하게 될 카투사들도 군사외교관이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