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짙은 무기력이 감돌고 있다. 학생은 수업을 듣지 않고, 교사는 속수무책이다. 고교 교사 10명 중 6명가량은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학교에서 자는 학생은 저녁이면 깨어나 학원에서 공부하고, 다음 날 학교에선 또다시 잠든다. 학교가 입시 보조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무기력한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의 실망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9일 세계일보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함께 고교 교사 872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이 50% 미만이란 응답이 64.3%에 달했다. 지난 5∼8일 진행된 조사에 일반고 교사 555명, 특성화고 교사 251명, 자율형사립고(자사고)·특목고 교사 60명 등이 참여했다.
일반고의 경우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은 30∼50% 미만이란 응답이 31.2%로 가장 많았고, 10∼30% 미만 23.8%, 10%가 되지 않는다는 응답은 6.1%였다. 집중하는 학생이 80% 이상이란 응답은 자사고·특목고에선 35%였지만, 일반고는 11.2%, 특성화고는 7.6%로 떨어졌다.
수업 참여율이 낮은 이유(2개 선택)는 △(학생이) 학업에 흥미가 없어서(59.5%) △미참여 학생 제재·지도 방법이 없어서(57.9%) △수업이 대입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27.5%) △맞춤형 학습이 이뤄지기 힘든 구조여서(15.8%) 순으로 나타났다. 수업에 흥미 없거나 대입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지만, 학교에서 제재할 방법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경기의 한 고교 교사 A(35)씨는 “처음엔 자는 아이를 볼때면 화가 났지만 현실을 받아들였다. 무기력이 학습됐다”고 토로했다.
A씨는 수업시간에 가끔 외롭다는 생각도 한다고 털어놨다. ‘지금 몇 명이 내 말을 듣고 있을까’란 궁금증은 그를 따라다닌 지 오래다. 어떨땐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A씨는 “20여명 중 절반은 자고, 4∼5명은 문제집을 풀고, 또 몇 명은 멍하니 앉아있는다. 수업을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학생은 3∼4명 정도인데 그조차도 없는 날도 있다“며 “가끔은 허공에 이야기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자는 아이 중엔 성적이 잘 나오는 ‘모범생’도 많다. A씨는 “예전엔 깨웠지만 점점 ‘깨워서 뭘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며 “공부가 하기 싫어서 자는 것이 아니고, 밤에 대입 공부하느라 피곤하다는데 뭘 해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