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져”… ‘양비론’ 팽배한 양평 [르포]

“생색만 내는 정치인·정부 모두 무책임”
혼란에 빠진 양평군…“현실 모르는 얘기”
민주당, 원희룡 장관 놓고 ‘양비론’ 팽배
변경안 종점 예정 강상면 오히려 ‘조용’
“정치놀음에 관심 없다” 비판 목소리

“얘기나 꺼내지 말 것이지 백지화라니요? 정부나 정치인들 모두 생색이나 내려고 할 뿐 책임감이 없어요.”

 

섭씨 3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 마주한 경기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의 부동산중개업소 대표 손모씨는 잔뜩 흥분한 표정이었다. 손씨는 “양평은 각종 규제로 힘들어 하는 곳”이라며 “땅값도 오르지 않고 이제 겨우 한두 건 거래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저곳에 선산과 문중 땅이 널렸는데 현실을 모르는 ‘정치꾼들’이 양평 주민을 어려움에 빠뜨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은) 이미 중부내륙고속도로에 인접해 분진과 소음 탓에 땅값이 바닥”이라며 “8년 전쯤 선산 땅을 내놓았다는 얘기까지 돌았다”고 전했다. 병산리는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안의 종점으로 지목된 곳이다.  

 

10일 폭염이 덮친 경기 양평군 강상면의 주택가가 인적이 끊긴 채 고즈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양평=오상도 기자

같은 강상면 교평리의 면사무소 앞에서 마주한 60대 주민 강모씨는 고속도로 백지화를 선언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을 도마 위에 올렸다. “장관 한 사람의 ‘가벼운 행동’으로 군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면서 “의혹이 제기되면 풀면 되는 것이지 성급한 백지화는 정치인답지 못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의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졌다”고 덧붙였다.

 

10일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 백지화를 놓고 혼란에 빠진 양평군에는 ‘양비론’이 팽배했다. 원안 노선이 지나는 양서면과 수정안 종점인 강상면 주민 모두 허탈함에 혀를 내둘렀다. 전·현 군수 간 책임론이 오가는 가운데 주민 대다수는 정치권에 책임을 돌렸다. 도심 쪽인 강서면 일대 도로에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정상화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즐비했다. 현수막 밑으로는 읍내로 진입하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50대 주부 김모씨는 “주말에는 읍내로 진입하기 위한 차량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며 “강상면에서 양평터미널까지 가는데 10분 걸리는 거리가 40분 가까이 늘어난다”고 전했다. 강원도로 향하거나 수도권으로 돌아오는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철이면 시내 교통이 마비될 정도라고 했다.

 

10일 경기 양평군 강상면 교평리의 면사무소 인근에 걸린 국민의힘 측 현수막. 야당이 ‘괴담’을 퍼뜨렸다며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원희룡 장관이 사업 백지화를 선언하면서 양평군민들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양평군이 자체 국회의원 선거구를 두지 못한 것에 대해 푸념했다. 일부 주민은 “여주·양평이 아닌 양평에 국회의원 선거구가 따로 있거나 12만 인구가 두세 배만 됐어도 이렇게 쉽게 백지화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양평군은 수도권에서 강원 강릉까지 이어지는 국도 6호선에서 양평지역을 가로지르는 구간의 평일 교통량을 3만5000대 가까이로 파악하고 있다. 행락객이 늘어나는 주말에는 살인적인 정체가 빚어진다. 교평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정모씨는 “서울~양평 고속도로가 숙원사업이 된 건 차량 분산효과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며 “고속도로가 뚫리지 않으면 정체가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군민대책위 발족식이 열린 군청 앞 회전교차로와 인근 사거리, 양평역 등 중심지 곳곳에는 사업 재추진을 요구하는 현수막들이 즐비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사업 백지화 선언 이후 지역 민주당 관계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근을 지나던 농민 최 모씨는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낸 집회”라며 이들의 의도를 비판했다.  

 

10일 경기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에 내걸린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 재개를 촉구하는 현수막.

변경된 사업계획안에서 양평IC 예정지로 지목된 강상면은 오히려 조용한 분위기였다. 이곳으로 향하는 도로에선 단 3개의 관련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이 중 2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당원들이 내건 것이었다. 전원주택 개발지와 국밥집 등이 이어진 도로는 한적하기까지 했다. 

 

강상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최모씨는 “IC 옆에 누구 땅이 있는지 무슨 상관이냐”며 “살지도 않는 사람과 외지인들이 애꿎은 흠집내기에 바쁘다. 관심도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집값, 땅값이 터무니 없이 싼 동네에서 사실 IC 들어오는 건 큰 변수가 안 된다”며 “만약 IC가 들어온다면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양서면과 강상면 두 곳에 모두 놓아주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양평군은 주민활용도 면에서 강상면 쪽이 더 높아 변경안을 제시했다는 입장이지만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강상면으로 종점이 바뀐다는 소식이 문재인정부 시절부터 나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변경된 노선의 종점이 예정된 병산리의 한 공인중개사는 “2∼3년 전부터 종점 변경에 대한 얘기가 꾸준히 나왔고 재작년부터 땅값도 조금씩 올랐다”면서 “그래서 땅을 가진 사람들은 호가를 올려도 안 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