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를 하면 차가 막히고 시끄러우니까 싫어하죠.”
12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수도권 총파업 대회가 열린 이촌역 3번 출구. 집회 현장 인근에 있던 40대 이모씨는 “(민주노총이) 보수 정권을 향해서는 집회를 많이 하지만 진보 정권에는 조용하다”며 “지금도 보면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도 중요하지만, 북핵 문제나 중국 문제에 대해서는 민주노총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이 지난 3일부터 연일 총파업 대회를 이어가는 가운데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들은 민주노총이 노동현장의 문제만 다루는 게 아니라 정치구호를 앞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촌역 인근에서 열린 수도권 대회에는 약 4000명이 모여 집회와 행진을 이어갔다.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은 총파업 대회사를 통해 “윤석열 정권의 친재벌 노동 적대시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민주노조는 초토화될 것이고 노동자들의 삶은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7월 총파업을 시작으로 거대한 민중항쟁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이 인근 도로를 통제하면서 시민들 사이에서는 교통 불편을 호소했다. 두 아들과 함께 인근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한 40대 한재원씨는 “집회하는 줄 모르고 왔다가 도로가 통제돼서 집에 가지를 못 하고 있다”며 “날도 더운데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번 총파업에 건 구호를 두고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미온적 대처나 ‘노조 때리기’ 등 정부의 최근 행보에 비판할 점이 있으나 ‘정권 퇴진’이라는 구호가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이라고 밝힌 직장인 손모(27)씨는 “총파업이라고는 하지만 어느 사업장에서 몇 명이나 파업하는지 모르겠다”며 “국회에서 입법으로 풀어야 할 문제도 정권 퇴진 사유로 내세우고 있는데 노동자 처우에 직접 관련된 문제 먼저 돌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휴가 시즌을 맞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에서는 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이날 총파업이 열린 부산에 거주하는 직장인 조모(29)씨는 “집회가 열리는 부산역 광장은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 곳인데 아무래도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라 지역 상인들에게 악영향을 끼칠까 우려스럽기도 하다”고 했다. 조씨는 “노조가 정권의 퇴진 운동을 벌이는 행태가 적절한지 의구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경제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주체들을 방해하는 무책임한 행위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상호 경제조사팀장은 통화에서 “하반기 경기 불씨가 살아나는 상황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지난달 16개월만에 무역수지가 흑자로 전환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1개월만에 2%대로 내려오는 등 ‘최악의 고비는 넘겼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파업이 계속되면 경제와 산업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반면 노조가 정치적 구호를 내는 데 과한 지적이 쏟아지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다. 이러한 지적이 궁극적으로 노조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공격이라는 것이다. 직장인 김모(27)씨는 “노동자의 삶을 가장 괴롭히는 게 정치”라며 “주 69시간 근무제나 최저임금 인상 등 결국 정치가 노동자의 일상을 좌지우지하는데 왜 노동자가 정치 구호를 외치면 안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총파업에서 윤석열정부의 퇴진과 현재 논의 중인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관철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통상 여름철에 노동계의 ‘하투’(夏鬪)가 벌어지지만, 이번 파업은 노동개혁을 추진 중인 정부에 저항하는 성격이 짙다. 정부의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비롯해 노조 탈퇴금지 규약에 관한 시정명령 등으로 노정관계가 악화일로는 걷는 상황에서 총파업을 통해 대정부 투쟁을 공고히 하려는 취지로 보인다.
이와 관련, 대한상공회의소 유일호 고용노동정책 팀장은 이날 통화에서 “일련의 파업의 명분은 사실상 현 정부의 퇴진, 최저임금 인상, 노조법 재개정이다. 이는 사용자가 결정할 수 없는 권한 밖의 일로 정치적 목적에 의한 파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총파업은 이번 정부 들어 노사정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데 따른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종선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윤 정부가 노동계와 지속적으로 대립 국면을 만들고 있는데, 근로시간이나 임금 개편 등 노동과 관련한 이슈들은 이해관계가 걸린 만큼 대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도 “노사관계는 기업 내 분배 구조만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정책에 영향받기 때문에 노사정이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며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나올 텐데, 불만이 표출되는 맥락에 관심 두고 정책 방향을 조정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