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의사면허 없이 의료기관 개설, 의료법인 탈법적 악용 확인 돼야 처벌”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을 통해 주도적으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했다고 판단하려면 의료법인을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사실까지 확인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17일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 대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대구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사진=연합뉴스

A씨는 의료재단 이사장 B씨로부터 의료법인을 설립하면 의사 자격이 없어도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의료법인을 설립한 후 의사를 고용해 요양병원을 운영했다.

 

B씨는 매매 대상인 경북 경주시의 한 요양병원을 증여하는 것처럼 꾸미고 A씨는 지인과 함께 총 3억원을 기부하는 것처럼 가장해 의료법인 설립허가를 받고 2009년 2월 의료기관 개설허가를 받았다. 한달여 후 A씨는 의료법인 이사장으로 취임해 요양병원의 개설자를 자신으로 변경한 후 의사들을 고용해 병원을 운영했다.

 

검찰은 A씨가 의사자격 없이 의료기관을 설립해 의료법을 위반하고, 이를 숨기고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총 270회에 걸쳐 137억여원의 요양급여비를 지급받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를 저질렀다고 보고 A씨를 기소했다.

 

A씨는 이사회가 운영되는 의료법인을 통해 의료기관을 적법하게 설립한 것이라며 의료법 위반과 사기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또한 자신의 재산으로 의료법인의 빚을 변제하기도 했다며 개인적 이득을 추구하기 위해 의료법인을 설립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1심은 의료법인은 형식에 불과하고 A씨가 의료기관의 실질적 개설자라며 의료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의료법인의 이사회가 모두 의료기관 경력이 없는 A씨의 가족과 지인들로 이뤄졌고 의사록에 이들이 실질적으로 의견을 내는 등의 기록이 없으며 급여를 과다하게 지급했다고 지적했다.

 

2심은 혐의에 대해서는 1심의 판단은 유지하면서 “불법진료는 하지 않았다”며 양형을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줄였다.

 

대법원은 그러나 판단을 뒤집고 사건을 파기환송 했다. 대법원은 “의료법상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의 개설·운영 등에 필요한 자금 전부 또는 대부분을 의료법인에 출연하는 것이 허용되고, 의료기관 개설·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것도 허용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출연금을 가장해 의료법인 설립허가를 받은 것에 대해 “A씨가 의료법인에 자산을 출연하는 과정에서 가장된 부분은 전체의 10%에 불과하다”며 “A씨가 사후적으로라도 재산을 출연했다고 볼 수 있는지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봤다.

 

또한 과도한 급여를 받은 부분에 대해서는 “A씨와 배우자 등이 고액 급여를 지급받은 것으로 보이나 상당기간 다른 직원과 유사한 수준으로 급여를 받았다”며 “근무 경력 등이 인정돼 급여가 인상됐을 가능성이 있어 의료법인의 재산을 부당하게 유출했는지는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판결의 의의에 대해 “의료법인 명의의 의료기관 개설과 관련해 비의료인의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판단기준을 제시해 의료기관의 지역 편중을 해소할 수 있다”며 “다만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의 운영 수익을 부당하게 유출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