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출생 미신고 영아’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는 가운데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두고 온 사례를 처벌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결국 “베이비박스도 영아유기”라는 강경한 입장이 있는 반면 “아이를 양육할 수 없는 여성에게 베이비박스 외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반박도 있다.
서울경찰청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달 29일부터 이달 7일까지 서울경찰청 소속 경찰서에 수사의뢰 등 통보된 사건은 총 216건”이라고 밝혔다. 수사 대상에는 병원 밖에서 출산해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온 경우도 포함됐다.
경찰청은 지난 10일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놓고 왔다’고 진술하는 사례가 대부분이고 일일이 확인하느라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며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놓았을 때 부모가 처해 있던 경제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맡긴 부모를 처벌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넣고 가는 것도 처벌 대상이고, 낙태도 안 되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에게 남은 선택지는 몰래 출산한 후 영아를 살해하는 것뿐”이라는 글이 올라와 9000회 이상 공유될 정도의 공감을 얻었다.
“출생기록만 있고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많은 아동이 준비되지 않은 부모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져 전수조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그나마 아이를 살리겠다고 베이비박스에 두고 간 엄마를 처벌하겠다는 것”이라는 SNS 게시글도 7000여회 공유됐다.
베이비박스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분분하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아동 권리를 침해하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허 입법조사관은 “베이비박스는 부모가 아동을 놓고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아동 입장에서는 자신의 태생을 전혀 알 수 없게 된다”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한국에 베이비박스를 폐쇄하고 국가가 개입해 부모를 설득할 수 있는 ‘익명출산제’(보호출산제)를 도입하라고 권고했다”고 덧붙였다.
베이비박스가 넓게 보면 ‘영아유기’이지만 형사처벌로 해결될 사안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선희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는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익명으로 아이를 버리게 하는 베이비박스 제도 자체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 변호사는 “베이비박스 유기를 처벌한다고 아기나 엄마가 보호되는 것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회적 비용을 들이지 않은 채 개인만 처벌하고 비난하기보다, 엄마가 임신 초반부터 아이와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게 지원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비박스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베이비박스를 처벌하면, 여성은 아이를 길에 버리거나 살해할 수밖에 없다”며 “명백한 위험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승 연구원은 “미국도 과거 ‘베이비박스가 영아유기를 조장한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베이비박스가 아이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전한 영아 피난처법’을 시행해 24시간 영업하는 공공기관에서 베이비박스 역할을 대신 해주고 있다”며 베이비박스가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