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로 흉작인데… 러 ‘곡물협정’ 파기에 국제 곡물가 급등

세계식량안보 위기 현실화… 기아악화 도미노 우려

밀 3%·옥수수 0.94% 등 일제히 상승
우크라서 곡물 57% 조달 개도국 타격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연장 거부로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며 세계 식량 안보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홍수와 가뭄 등 이상기후로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한 흉작 탓에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는 상황이다.

17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가 협정 무효를 선언한 뒤 미 시카고상품거래소(CBT)의 밀 선물 가격은 3% 올라 부셸(곡물 중량 단위·1부셸=27.2㎏)당 6.81달러(약 8590원), 옥수수 선물 가격은 0.94% 상승한 부셸당 5.11달러를 기록했다.

사진=AFP연합뉴스

국제사회는 이번 협정 중단이 전 세계의 식량 가격 인상과 개발도상국의 기아를 악화하는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 수출의 10%를 차지하는 세계 5위의 밀 수출국이자, 보리·옥수수·유채유의 세계 3대 수출국 중 하나다.



애덤 호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흑해곡물협정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등한 세계 식량 가격을 낮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이번 결정은 세계의 식량 불안정성을 악화하고 수백만 명의 취약한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러시아 편을 들고 있는 중국마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에 협정을 복원하기 위한 협상을 재개할 것을 촉구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곡물의 최대 수입국이다.

협정 중단의 여파는 아프리카 14개국 등 개발도상국에 가장 먼저 들이닥칠 전망이다. 국제구조위원회(IRC)의 동아프리카 지역 책임자인 샤슈왓 사라프는 CNN에 “동아프리카 곡물의 약 80%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되고 있으며, 올해 식량 가격이 40% 가까이 급등해 5000만명 이상이 기아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협정 이행을 맡았던 공동조정센터(JCC)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57%가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됐다.

더 큰 문제는 올해 엘니뇨(해수 온난화) 등으로 인한 이상기후에 따른 흉작이 이어져 이미 세계 식량 안보에 경고음이 켜진 상황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 밀 수확 철인 지난 5월 허난성 일대에 쏟아진 폭우와 지난겨울부터 이어진 남서부 지역의 가뭄으로 올해 여름 밀 수확량이 전년 대비 0.9% 감소했다. 주요 밀 수출국인 호주 역시 가뭄 등으로 2023∼2024년도 밀 수출량이 이전 대비 29%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반면 올해 대풍작을 맞은 러시아가 밀 수출을 ‘무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의 밀 수출량은 2023∼2024년 4750만t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미 농무부는 추산했다.

사이먼 이브넷 스위스 생갈렌대 국제무역·경제개발 교수는 AP통신에 “러시아가 밀 수출세를 인상할 수 있다”며 “이는 세계 곡물 가격을 인상할 뿐 아니라 러시아가 더 많은 전쟁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