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8년간 태어났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그림자 아이’ 두 명 중 한 명은 숨졌거나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어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2022년 출생 미신고 아동 2123명 중 12%인 249명이 사망했다. 경찰은 생존 및 소재파악이 되지 않은 814명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생존이 확인된 아동은 1025명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니 충격이 크다.
지방자치단체가 아동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경찰에 수사 의뢰한 사례는 1095건인데 그 사유를 들여다보면 우려스럽다. 베이비 박스 등 유기가 601명에 이르고 보호자 연락 두절·방문거부(232명), 출생 사실 부인(72명) 사례도 적지 않다.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심각한 학대에 시달리거나 유기·살해된 아기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경찰청도 “(아동의) 사망 정황이 의심되는 사건이 몇 건 더 있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감사원 감사 전까지 정부가 그림자 아기의 실태를 까맣게 몰랐다는 점이다. 감사 대상이 아닌 2015년 이전에 이런 일이 더 빈번했을 게 틀림없다. 복지부, 질병관리청 등 유관기관이 이 문제를 아예 인지하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방치한 것인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국회는 어제 본회의에서 영아살해·유기범도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는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달 말에는 의료기관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는 출생통보제(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도 의결했는데 한참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이 제도는 내년 7월부터 시행되는데 정부는 전산망 구축 등 준비작업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출생신고는 인간의 천부적 권리이자 인권의 출발점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출산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 10대 청소년과 미혼모, 성폭력 피해자 등은 병원 밖 출산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병원에 출산기록조차 없는 아이는 더 위험해진다.
이제 부모가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익명으로 출산하면 국가가 아이를 지켜주는 보호출산제 도입을 검토해야 할 때다. 물론 양육 포기와 입양아동 양산을 부추기고 아이가 훗날 친부모를 찾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생후 며칠 만에 아기가 살해·유기되는 참혹한 현실에 비하면 한가한 걱정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지혜를 모아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합리적인 대안을 찾기 바란다. 저출산 재앙이 현실로 닥친 나라에서 귀한 생명이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비극을 더는 방치할 수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