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이 노사 간 팽팽한 기싸움 끝에 시급 9860원에 합의를 이뤘다. 노동계와 경영계 측의 ‘동상이몽‘으로 법정 심의 기한을 2주가량이나 넘기고서다. 진통 끝에 겨우 결정된 숫자, 16일 취재진이 만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예비 창업자들은 모두 올라갈 인건비 걱정에 한숨을 쉬었다.
“문을 오래 열수록 손해예요. 최저임금 오르면 폐업도 고민할 것 같아요.”
이규엽(65)씨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십여 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많은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선언할 때도 버텼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주일에 6일간 꼬박꼬박 식당 문을 열었다.
하지만 최근 그는 토요일 영업을 접었다. 물가 고공행진을 당해낼 재간이 없어서다. 이씨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유행 이전만 해도 식당 일주일 재룟값이 100만원이 들었는데, 지금은 물가 상승으로 최소 150만원이 든다. 그는 “코로나19가 종식되면서 식당을 찾는 이들이 더 늘긴 했지만,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고 토로했다.
직장인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구청 구내식당을 더 많이 찾는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식당이 관악구청 앞에 있다보니 공무원 손님이 많은데, 요즘 발길이 뜸하다는 것이다. 이씨는 “공무원 하루 식대가 8000∼9000원인데 이 돈으로 밖에서 점심 한 끼 먹기 어려우니 다들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것 같다”며 “식자재 가격이 올라도 음식 가격을 더 받을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기세와 가스비도 올랐다. 식당에 상시 에어컨을 틀어야 하는데, 이번 여름에는 매달 전기세가 최소 10만원이 더 나올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씨에 따르면 현재 식당은 매달 적자만 300만∼400만원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상승도 기다리고 있다. 이씨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달마다 늘어나는 인건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직원을 잘라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요즘 가게 문을 닫는 상인들을 부쩍 많이 보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바로 옆 ‘샤로수길’(서울대입구역 주변)만 봐도 폐업하거나 손님이 줄어 임시 휴업하는 가게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며 “우리도 직원과 협의해서 7월 한 달 동안 쉬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한숨지었다. 이씨는 “이러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식당은 세월 속으로 사라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허탈하게 말했다.
◆가격 인상으론 한계…“사람 줄일 수밖에”
최저임금이 오르면 자영업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결국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다. 오른 물가에 손님 발걸음이 줄었는데, 여기서 더 가격을 올리긴 어렵다는 설명이다. 전국 소상공인 684만2959명과 소기업 33만8865개(2020년 기준)가 영향을 받게 된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5월 전국에 있는 소상공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58.7%)이 최저임금이 오르면 신규 채용을 축소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응답자 5명 중 2명이 기존 인력을 줄이거나(44.5%) 기존 인력의 근로 시간을 단축할 것(42.3%)이라고 대답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축소라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하는 배경이다.
자영업자들은 한 직원과 같이 오래 일하고 싶어도 그러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본부장은 “직원을 더 고용하고 싶어도 최저임금이 오른다면 근무 시간을 쪼개거나 자동화 기계를 들여올 수밖에 없다”며 “직원들과 함께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고 싶어도 인건비가 오르면 마진이 안 남으니, 혼자 혹은 가족끼리 일하는 경향이 심화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청년 창업자들도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요식업계의 경우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 이미 최저임금 이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카페 창업을 앞둔 20대 심모씨는 “주변에 알고 지내는 곱창집 사장님은 시급을 1만3000원씩 주는데도 직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더라”라며 “최저임금이 부담스러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하고 최소한의 직원만 뽑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심씨는 최저임금을 올린다면 그에 따른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일정 기간 부가세 부담을 줄여주든지, 물가 상승에 따른 여파를 해소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씨는 “국가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을 텐데 그런 조처 없이 어려운 상황들을 모두 자영업자가 짊어지게 하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외국인 노동자 많은 지방·농촌 지역…“임금 인상에 맞는 대책 부재 우려”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지방도 최저임금 인상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상시근로자 300인 미만 업체에서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해 정부로부터 고용허가서를 발급받아 합법적으로 비전문 외국인(E-9, H-2)을 고용할 수 있는 ‘외국인고용허가제’를 통해 채용한 외국인이다. 이들도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최저임금제 적용을 받는다.
항구도시 부산은 지역특성상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수산 및 조선업체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다. 수산업의 경우 연근해어업과 양식업, 수산물 가공업체들이 대부분이고, 조선업은 수리조선업 위주의 중소형 조선업체들이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부산지역 수산업 및 조선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수는 700여명에 달한다. 여기에 법무부와 수협중앙회에서 운영하는 ‘외국인선원제도’를 통해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가 1500여명에 달한다. 주로 연근해어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고정적인 급여를 받는 원양어업 선원들과는 달리 최저임금제를 적용받는다.
상승한 최저임금으로 국내 연근해어업 대부분이 도산 위기에 몰렸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형선망수협 한창은 상무는 “최저임금은 외국인 소비자물가지수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며 “사회적·경제적 여건을 우선적으로 감안해야 하는데, 솔직히 힘들다”고 털어놨다. 조선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부산 영도구의 한 수리조선업체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당장 조선소 문을 닫아야하는 실정”이라면서도 “당연히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지만, 내국인과 동등한 임금체계(최저임금)를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외국인 노동자 수급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경남 함양의 한 농협조합공동법인 A대표는 “한창 바쁠 때는 평일에 비해 1.5배의 임금을 지급하고, 주말에도 일할 경우가 많다”며 “최저임금이 오르면 초과근무수당과 산재 및 건강보험료까지 덩달아 올라 농가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산업단지가 즐비한 인천도 사정이 비슷하다. 남동·부평·주안 3개 국가산단을 떠받치는 노동시장과 산업·생산 및 소비 구조는 저임금 근로자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사용자와 근로자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린다. 사업주들은 경영 부담이 가중될 것을 우려한다. 수익은 제자리인데 인건비만 오른다면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어서다. 재무 측면에서도 제조업·비제조업 가릴 것 없이 안정적인 운영이 어렵다면 인력 대체 수단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 30대 직원은 “올해 당장 최저임금이 부족하다는 게 직접적으로 느껴진다”며 “시급 9600원으로는 본인과 가족이 생활하기에 턱없이 모자기 때문에 치솟는 물가 수준이라도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