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커피타임’ [박영순의 커피언어]

보이지 않는 것이 반복되면 이름을 얻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그렇다. 일정하게 되풀이되는 것은 불안하지 않다.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의식을 치르듯 커피를 마시는 일이 ‘커피 타임’(Coffee time)이라 불리고, 편안함을 주는 것도 같은 이치겠다.

‘커피’와 ‘시간’을 합성한 이 단어의 어디에도 휴식이나 재충전, 소통, 명상, 사유 등의 의미를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행위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공유할 만하다고 인정하는 가치가 하나둘 붙게 되면, 그것은 곧 문화가 된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는 당초 ‘커피 아워’(Coffee hour)였다. 미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메리엄-웹스터 인터넷 사전에는 1867년에 처음 ‘커피 아워’가 등장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러시아워, 골든아워, 해피아워 등에서는 대체로 중요한 의미가 시간을 나타내는 ‘아워’에 방점이 찍혀 있다.

커피를 나누는 시간을 의미하는 용어들에는 휴식, 재충전, 교류, 사유라는 가치를 담아 커피 음용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은 과정이 담겨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점차 커피 아워가 단지 특정 음료를 마시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여러 사람이 교류하며 화합하는 문화적 가치를 지니게 되자, 20세기에 들어서는 ‘커피 타임’이라고 불리게 됐다.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은 영국 작가 조지프 콘래드가 1917년에 발표한 소설 ‘그림자 선’(The Shadow Line)에서 ‘커피 타임’이 최초로 문장에 쓰인 것으로 기록했다. 커피 타임이라는 용어가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티 타임’(Tea time)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티 타임은 유럽 상류층의 오래된 문화로서, 문헌에 처음 나온 것은 172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19세기를 거치며 커피가 세계적인 음료로 위상을 높이면서 ‘커피 타임’은 귀족의 전유물로 간주되던 티 타임의 자리를 차지했을 뿐 아니라 대중도 커피를 즐기는 시간으로 확장됐다. 커피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또 다른 단어를 장착했다. ‘커피브레이크’(Coffee break)는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동시에 일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하는 절차가 보편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의미하는 이들 용어 가운데 우리나라에 처음 나타난 것은 ‘커피 타임’이다. 극작가 김영수가 1956년 1월 중앙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오키나와로 가는 여객선의 스케줄 가운데 커피 타임이 있음을 전한 대목이다. 1960년 12월 한 중앙지의 독자 투고란을 보면, 국내에서도 커피 타임이 일상 속으로 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명이 ‘애타는 生’인 독자가 한 의료원에서 커피 타임으로 인해 벌어진 부작용을 고발했다. “병원의 직원이 오전과 오후 시간을 정해 커피를 마시고 있어 환자에게 불편과 고통을 끼치고 있으니, ‘커피 타임’을 갖고 싶거든 일에 지장이 없도록 윤번제로 하라”는 내용이다.

1960년대 산업화와 함께 국내에서도 ‘커피브레이크’가 활용되기 시작했다. 1966년 11월 한 일간지는 인터뷰 코너의 명칭을 ‘커피브레이크’라고 달았다. 1970년대로 들어서면 외교와 정치 뉴스에서 커피브레이크를 적절하게 활용해 성과를 거두었다는 표현들이 자주 등장했다. 노동 현장에서도 커피브레이크를 보는 시선이 호의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1974년 한 일간지의 칼럼을 통해 알 수 있다. 서양에서는 점심시간의 휴식과 함께 커피브레이크라는 중간 휴식을 더 두고 있다면서 일의 능률과 삶의 조화를 위한 리듬이라고 치켜세웠다.

바야흐로, ‘커피와 함께 취하는 휴식’은 메타포의 영역에까지 들어가 문학적 수사를 낳고 있다. ‘내 삶의 커피 타임’이라고 하면, 세상의 시간을 좇아 가느라 여념이 없던 자신이 주체적으로 자아를 마주함으로써 삶의 변화가 시작된 계기를 의미하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