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폭우에도 든든… 수해 막는 안전판 된 ‘대심도 터널’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수해서 강서·양천구 지킨 ‘대심도 터널’

지하 50m에 길이 4.7㎞·직경 10m 규모
잠실 수영장 85개 맞먹는 저류배수터널
장마에 풀가동… 양천구 물난리 사라져

서울서 첫 설치… 수방 대책 전환점으로
광화문·강남역 등에도 사업 추진 예정
거액 사업비용에 일부선 ‘가성비’ 제기

근대 기상 관측 115년 만에 가장 많은 비가 서울에 내린 지난해 8월 8∼9일. 하루 및 시간당 최다 강수량 기록을 갈아치운 비가 퍼부은 이틀간 서울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은 ‘풀가동’에 들어갔다.

지하 50m에 설치된 길이 4.7㎞, 직경 10m의 저류배수 터널에 총 저류량(32만t)의 70% 수준인 빗물 22만4929t을 모아 인근 강서·양천구 일대를 수해로부터 지켜냈다.

지난 5월 15일 서울 양천구청 관계자들이 여름 풍수해에 대비해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 현장 점검을 벌이고 있다. 양천구청 제공

◆수방 핵심 대책… 역사적 전환점



당시 강서·양천구에 설치된 유입 수직구 3곳이 큰 역할을 했다. 하수관이 일정 수위를 넘기면 관거와 연결된 지하 유도수문이 열리고, 이 수문으로 들어온 빗물이 유입 수직구를 거쳐 터널로 모인다. 이렇게 터널을 따라 흘러간 빗물은 유출 수직구를 통해 목동 빗물펌프장을 거쳐 안양천으로 배출된다. 유입 수직구 쪽 터널 깊이를 펌프장 쪽보다 얕게 해 물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원리를 이용해 배출한다.

유입 수직구 3곳와 함께 터널 가스를 배출하는 환기 수직구, 터널과 펌프장 유수지를 연결하는 유출 수직구, 배수량을 감시하는 유지관리 수직구 3곳 등 모두 6개의 수직구가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을 구성한다.

총사업비 1381억원이 투입된 이 시설의 저류량은 잠실 올림픽 수영장 85개와 맞먹고, 2013년 첫 삽을 떠 2020년 5월 운영에 들어갔다.

분지인 강서·양천구는 과거 침수 피해가 잦아 우면산 산사태가 있었던 2011년 기습 폭우 당시에도 물바다가 됐다.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은 유례없는 폭우에 서울시가 마련한 수방 대책의 핵심으로 손꼽히는데, 시간당 100㎜에 달하는 집중호우가 쏟아져도 대비할 수 있게끔 설계됐다.

서울 최초 ‘대심도 터널’인 만큼 공사 난관도 만만치 않았다. 터널 굴착과 동시에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NATM(New Austrian Tunneling Method) 공법’으로 진행됐다. 오스트리아에서 개발한 이 공법 덕분에 버팀목 없이 시멘트를 고압 분사해 터널을 만들면서 한번에 1m씩 전진할 수 있었다.

서울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의 유입 수직구(빨간 동그라미)를 통해 들어온 빗물이 터널을 따라 목동 빗물펌프장(노란 동그라미) 쪽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시뮬레이션 그래픽. 양천구청 제공

하수관 교체 등 기존 상습 침수 미봉책에서 단번에 벗어난 서울시 수방 대책의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2010년과 2011년 물난리 때 양천구에서 수천 가구가 침수됐지만, 시설 운영 첫해인 2020년에는 이 같은 사례가 없었다. 지난해는 단 두 가구가 침수됐지만, 개별 배수 장비로 인한 문제로 알려졌다. 이 같은 소식에 경북 포항시 등 국내뿐 아니라 베트남과 일본 등에서도 견학을 다녀갔다고 한다.

강종구 양천구 치수과 배수시설팀장은 지난 10일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게릴라성 집중호우 시 기존 하수관의 부담을 덜어 주는 데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이 큰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일부선 ‘가성비’ 의문도

콘크리트 중심의 개발로 투수층이 점점 사라져 도시 배수시설 중요성은 갈수록 부각된다. 비가 땅에 흡수되지 못하고 지표면에 유출되면 하수관 수위는 올라가고 침수 피해 가능성도 커진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대심도 빗물배수시설’ 설치 사업의 본격 추진에 들어갔다. 강남역·광화문·도림천·동작구 사당동·강동구·용산구 일대를 후보로 정했고 2027년까지 강남역·광화문·도림천 일대부터 완공할 방침이다. 앞서 우면산 산사태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했던 전례도 있으며, 신속한 사업과 일관성 있는 추진을 위해 시는 태스크포스 운영에도 들어갔다.

하수관과 연결된 수문이 열리자 빗물이 유입 수직구 중 하나인 저지 수직구로 흘러드는 모습을 촬영한 폐쇄회로(CC)TV 영상. 양천구청 제공

다만 거액이 드는 사업비용을 이유로 일각에선 ‘가성비’ 의문도 제기된다.

지난해 9월 서울시청에서 열린 ‘수해예방 시민 대토론회’에서 10여년 전 서울시 수방 대책을 담당했던 전 하천관리과장인 고태규 장맥엔지니어링 고문은 “당시 10년간 5조원을 투입해 고질적인 침수 지역 7곳에 대심도 터널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며 “그 과정에서 ‘고가의 비용이 들어가는데 왜 추진하려고 하느냐’는 의견이 나왔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결국 신월 대심도 터널은 추진됐지만, 그 외 지역은 다른 방법으로 대체됐다”며 “대심도 터널 외에는 직접적인 해결 방안이 아니어서 지금까지 강남 일대 침수가 일어나는 상황이 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