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와 시설물 등 인위적인 개발→주민 민원 또는 현장 관계자의 내부고발→행정당국의 묵살….
정부 수립 후 지난 70여년간 자연재해는 얼굴만 다를 뿐 내용은 늘 똑같았다. 2011년 서울 서초구 우면산 2차 산사태와 2022년 경북 포항시 하천 범람 침수에 따른 인근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 최근 경북 예천군 산사태와 충북 청주시 오송 지하차도 침수까지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자연재해는 넓은 의미에서 대부분 인재(人災)였다.
이수곤(70) 전 서울시립대 교수(토목지질공학)는 성수대교 붕괴 참사(1994년) 이후 지난 30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자연재해·사회재난은 관재(官災)라고 단언하는 방재 전문가이다. 재난안전 당국의 ‘우왕좌왕’ 초동대응부터 다른 부처·기관으로의 ‘책임 떠넘기기’는 이미 목도하고 있는 바다. 앞으로 예상되는 형식적 원인 조사, 사전 예방보다 사후 복구에 치중하는 행태 또한 이 전 교수가 재난관리방식을 관에서 민(民)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다.
각종 재난 예방·관리·대응의 전위대격인 시·군·구 부서 간 칸막이와 이기주의도 재난 피해를 키우는 데 일조한다. 2011년 7월27일 발생해 1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우면산 산사태도 그랬다. 이 전 교수는 산사태 발생 9개월 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에게 정책제안서를 보내 산 정상에 위치한 공군부대 등의 요인으로 대형 산사태 발생 가능성을 경고했다. 하지만 공원녹지과, 도로과, 주택과 등 워낙 다양한 부서가 엮여 있는 관계로 별다른 예방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이 전 교수는 “공무원들은 형식적으로 안전점검을 하고, 관련 제보가 있더라도 ‘설마?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치기 일쑤”라고 말했다.
기후위기 등으로 점차 덩치를 키우고 있는 자연재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취약지역 실태파악이 우선돼야 하고, 민간 주도의 국민재난예방조직을 구성해야 한다는 게 지난 30여년간 융합연구(토목공학·지질학)와 현장조사에 매진해온 이 전 교수의 결론이다.
그는 “국내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은 (현재 산림청·행안부가 지정한 취약·위험지역 5만여곳의 20배인) 100만곳으로 추정된다”며 “실태조사에는 현장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주민들이나 공사관계자들을 반드시 포함시켜 공무원·협회·전문가 집단의 이권 카르텔을 견제토록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