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 안정항로 출발점인 우크라이나 오데사를 집중 공격하고 있다. 내부 반란과 우크라이나의 대반격 등 내우외환에 휩싸인 러시아가 협정을 일방파기하며 식량 무기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인데, 이로 인한 세계 곡물 가격 불안 등 파장이 만만찮은 상황이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최대 곡물 수출항인 오데사항에 이날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이 이어져 민간인 1명이 사망하고 어린이 4명을 포함해 최소 21명이 다쳤다. 오데사항을 겨냥한 러시아의 공습은 거의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협정 파기를 선언한 다음 날(18일)부터 21일까지 연속 나흘간 오데사항과 미콜라이우에 공습을 퍼부었다.
러시아는 오데사항을 거쳐 흑해를 통해 수출되는 우크라이나 곡물의 씨를 말려버릴 태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9일 러시아 공격으로 최소 6만t 이상의 곡물이 없어졌다고 밝혔다. 세계식량계획에 따르면 곡물 6만t은 27만명 이상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우크라이나 최대 곡물 생산업체 중 하나인 ‘커널’의 최고경영자 예벤 오시포프는 이번 공격으로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능력이 50%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에 말했다. 러시아가 해안선의 대부분을 통제하고 있고, 철도 등 대체 경로를 통한 곡물 수송 역시 시간·비용이 모두 늘어나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어서다.
러시아는 ‘대풍작’ 상황인 자국산 곡물로 우크라이나산을 대체하겠다는 목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 “러시아는 올해 기록적인 수확을 예상하고 있다”며 “상업적으로나 무상으로나 우크라이나산 곡물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식으로 러시아가 세계 곡물 시장 주도권을 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서방의 분석이다. 러시아가 수출량을 조절하며 가격을 높여갈 위험이 있고, 이 돈은 결국 전비(戰費)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0일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된 9월 인도분 밀 선물 가격은 부셸(곡물 중량 단위·1부셸=약 27.2㎏)당 7.33달러를 기록, 러시아의 파기 선언 이후 11%가량 올랐다. 뉴욕타임스는 지난주 국제 밀 가격이 최대 13%까지 뛰었다고 전했다.
흑해를 집중 겨냥한 러시아 공세가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 등 내륙에서의 잇따른 패배 탓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이날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초기에 점령한 영토의 50%가량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파괴한 러시아에 대한 비난 목소리도 높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데사 역사지구 내 정교회 축일 대성당이 이날 공격에 대파됐다. BBC에 따르면 성당의 지붕이 반절 넘게 날아갔고 내부 기둥과 창문도 산산조각이 났다. 2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대성당은 오데사에서 가장 큰 정교회 건물로, 2010년에는 러시아 정교회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러시아인)로부터 축성까지 받았다.
오드리 아줄레이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이 터무니없는 파괴는 우크라이나의 문화유산에 대한 폭력이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러시아를 비난했다.
러시아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20일 우방국 중국 영사관 건물이 파손된 데 이어 이날엔 그리스 영사관이 피해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