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곡물 파동과 식량 안보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이 폭발하면서 지구촌에 재앙이 닥쳤다. 이때 유출된 이산화황이 대기권에 퍼져 태양열을 차단하는 바람에 지구 온도가 5도나 떨어졌다. 세계는 이듬해 ‘여름이 없는 해’를 맞이했고 서유럽의 곡물 생산은 75% 이상 줄었다. 8만2000여명이 기아와 질병으로 숨졌고 영국, 프랑스, 스위스, 독일 등에서는 폭동이 끊이지 않았다. 조선에서도 대흉년이 들었는데 인구가 1년 사이 130만명이나 줄었다.

이런 식량난에 나라가 흔들린 사례가 허다하다. 기원전 75년 무렵 로마의 속주에서 대기근이 발생했다. 지중해 일대에서 해적들이 준동해 식량 운송이 차질을 빚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빵값때문에 두 명의 집정관이 쫓겨났다. 2007∼2008년에는 가뭄 등 이상기후로 전 세계가 곡물 파동에 시달렸다. 이집트에서 식량난이 대규모 시위로 번졌고 급기야 30년 독재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하는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당시 월가에서는 농산물가격이 급등한 현상을 가리켜 농업과 인플레이션을 합친 ‘애그플레이션’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는데 사회 안정을 뒤흔드는 ‘침묵의 쓰나미’라고 불릴 정도였다.



애그플레이션 공포가 다시 세계를 덮치고 있다. 국제 밀 가격이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쌀값도 1년 전보다 20% 이상 급등했다. 곳곳에서 곡물 사재기 조짐까지 나타난다. 얼마 전 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을 폐기하면서 유럽의 곡창 우크라이나가 연간 3300만t의 곡물을 수출해온 바닷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여기에 극한 기후변화가 일상화하면서 식량 위기가 고착화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들은 지구 식량이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없는 ‘한계식량’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세계 각국에도 식량 안보 비상이 걸린 지 오래다. 헝가리 등 19개국이 식품수출을 금지했고 아르헨티나 등 8개국은 수출제한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식량자급률이 작년 32%에 불과하고 연간 1700만t 곡물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세계 7위의 수입국이다. 정부와 민간이 다가올 식량 위기에 대비해 머리를 맞대고 비상한 대응책을 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