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부부싸움'으로까지 번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쌍방울 대북송금 관련 진술 번복 배경에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선 재판 과정에서 뒤늦게 국가정보원 문건, 투자자 회의록 등 추가 증거들이 잇따라 제시되자 '쌍방울과의 연관성 전면 부인'에서 '형량 줄이기'로 전략을 변경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 그룹으로부터 억대의 뇌물 및 정치자금 수수 혐의, 800만 달러 대북송금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10월 14일 기소돼 지금까지 9개월 동안 재판을 받고 있다.
수사가 시작된 이후 줄곧 모든 혐의를 부인하던 이 전 부지사는 최근 대북송금과 관련한 일부 입장을 돌연 번복했다.
그가 바꿨다는 진술은 "쌍방울에 경기도지사 방북 추진을 요청했다"는 쌍방울과의 연관성 인정이다.
또 하나는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보고' 내용이다.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이 비즈니스를 하면서 북한에 돈을 썼는데, 우리도(도지사 방북) 신경 써줬을 것 같다"는 취지로 당시 도지사였던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보고했고, 이 대표가 "알았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부지사의 검찰 진술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지난 달 중순 전후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기소된 지 약 8개월 만이다.
그동안 이 전 부지사는 재판을 대리하는 변호인(법무법인 해광)과 검찰 조사에 입회하는 변호인을 분리했는데, 그가 일부 진술을 바꾼 지난 달 중순을 기점으로 법무법인 해광이 검찰 조사까지 입회하기 시작했다.
재판과 수사 변호인단을 통합한 건 이 전 부지사가 그동안 고수해 온 '전면 부인'을 '형량 축소'로 변경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얼마 전 법정에서 이 전 부지사의 주장과 배치되는 객관적 증거들이 연이어 공개되자 전략을 바꿨다는 것이다.
5월 말∼6월 초 이 전 부지사의 법정에서는 2018년 말 쌍방울의 대북사업 추진 동향을 기록한 국정원 직원의 내부 보고 문건이 증거로 채택됐다.
이 문건은 당초 검찰 수사에서 확인된 것이 아니라 법정 증인으로 나온 대북 브로커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이 "모든 내용을 국정원 직원에게 말했다. 국정원 문서를 확인해보라"고 증언하자, 검찰·변호인 동의 하에 이뤄진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확보된 문서다.
국정원 보고 문서에는 안 회장이 법정에서 증언했던 "이 전 부지사가 북측 인사에게 스마트팜 사업비를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를 지키지 못해 김성혜 북한 조선아태위 실장이 난처해했고, 쌍방울이 경기도 대신 지급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부지사는 이 같은 주장을 줄곧 부인해왔다.
또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한 경영 컨설턴트 김모 씨의 회의록도 최근에 증거로 제출됐다.
김씨는 2018년 말부터 2019년 7월까지 쌍방울 그룹에 외부 투자금을 유치하는 경영 컨설팅 업무를 맡았다.
김씨가 작성한 회의록에는 "김 전 회장은 '(대북)사업 분야 우선권 확보가 반신반의'라는 투자자 지적에 "경기도 부지사(이화영)는 그룹의 리더로 봐도 된다"며 "경기도와 공동 추진하고 경기도가 보증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 전 부지사가 지난해 10월 최초 기소될 당시 적용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의 법정형은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일 경우 10년 이상이다.
기소 시 이 전 부지사에게 적용된 뇌물 가액은 2억원이 넘는다.
이 전 부지사에게는 이 외에도 정치자금법 위반, 외국환거래법 위반, 증거인멸교사 등 3개 혐의가 적용돼 있어 법정 하한 형량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대북송금으로 쓰인 800만 달러의 성격과 관련해 뇌물 또는 제3자 뇌물 여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추가 기소도 목전에 두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이 장기간 진행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증거가 수집됐고, 이 증거들이 그동안 김성태 전 회장의 진술 등과 부합하면서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이화영 피고인이 홀로 재판받는 것보다 도지사의 공범 또는 종범으로 재판받을 때 이화영 피고인 양형에 보다 유리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