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행에 빠진 인간들을 벌하고자 신은 대홍수를 일으켰다. 하지만 인간을 절멸할 생각은 없었는지 당시 유일하게 신에게 순종하고 욕심이 없었다는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했다.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얘기다. 물론 대홍수를 통한 신의 심판과 선택받은 자의 생존은 비단 성경에만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다.
‘창세기’에 따르면 노아가 만든 방주는 길이 135m, 폭 23m, 높이 14m 크기였고 전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건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형태를 보면 말 그대로 방주(方舟), 네모난 모양이었다. 그런데 중세를 거치면서 노아의 방주는 앞이 툭 튀어나온 배의 형상으로 변했다. 하지만 방주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 ‘신의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의미는 변하지 않았다.
율법에 의한 구원을 믿었던 유대교와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강조했던 이슬람교와 달리 개신교와 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다고 여겼다. 그래서 ‘신의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의미를 지닌 ‘방주’는 지금도 많은 교회가 선호하는 이름이다. 지도에서 검색해 보니 전국에 대략 160개의 방주교회가 있다. 그중 건축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은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방주교회다.
대지를 처음 갔을 때 유동룡은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과 공기가 주변을 달려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이런 느낌을 들게 한 하늘의 움직임을 건물에서 구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반사도가 각기 다른 세 가지 알루미늄 캐스트로 지붕을 씌웠다. 빛이 지붕을 비출 때 알루미늄 캐스트의 각기 다른 반짝임은 시시각각 변하는 제주섬 특유의 하늘을 닮았다.
방주교회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건물을 둘러싼 수(水)공간이다. 오래전부터 물을 건너는 행위는 현세와는 분리된 또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상징했다. 특히, 종교에서는 요단강을 건너듯,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넘어가듯 물을 건넘으로써 ‘속(俗)의 세계’에서 ‘성(聖)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믿었다. 이 과정에서 수공간은 성격이 다른 두 세계를 전이(轉移)하는 매개자다. 그래서 종교 시설에서 수공간은 신을 만나러 궁극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신자들이 거쳐야 하는 단계로 간주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자들은 주의를 기울이며 마음을 다잡는다. 방주교회에서도 예배당으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수공간에 천천히 그리고 차분히 건너야 하는 징검다리가 설치돼 있다.
여기에 제주섬이라는 지형을 더하면 제주 방주교회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 안에 있는 물 한가운데 떠 있는 하나님의 집이 된다. 즉, 방주교회 예배당은 물을 두 번 건너야 도달할 수 있는 신성한 장소다. 건축가가 크지 않은 방주교회에 종교적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
방주교회를 둘러싼 수공간은 건축물의 조형이 시작된 보이지 않는 제주의 자연을 드러내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물에 반사된 하늘은 지붕 선이 조응하는 하늘에서 건축물을 둘러싼 하늘로 확장된다. 방주교회는 물로 둘러싸여 있기도 하지만 물에 비친 하늘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 등장하는 건 제주에 많다고 하는 바람이다. 바람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 바람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타자(他者)가 필요한데, 방주교회에서는 교회를 둘러싼 수공간이 바로 그 타자다. 바람은 교회를 둘러싼 물을 출렁거리게 하고 출렁거리는 물에 반짝이는 빛을 통해 우리는 바람을 느낀다.
형태는 건축물의 개념과 건축가의 의도를 설명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방식이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더 많은 의미와 이야기를 형태 아래 묻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설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서초 예술의 전당은 ‘갓’으로, 서울시 신청사는 ‘쓰나미’로 불린다. 방주교회에서도 물로 둘러싸인 건물은 물에 떠 있는 방주나 배를, 건물 가운데 꽂힌 천창은 배의 굴뚝이나 돛대를, 휘어진 지붕 선은 배의 진항을, 심지어 반짝이는 지붕은 비늘로 해석될 뿐 다른 의미로 연결되지 못한다.
제주 방주교회가 이름을 통해 신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는 교회 공동체를 지향할지라도 교회를 바라보는 우리는 건물의 다른 이름인 ‘하늘의 교회’를 통해 제주섬을 담고자 했던 건축가 유동룡의 노고를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