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묘는 안락사 반려묘는 격리… ‘AI 감염’ 고양이 살처분 기준 논란

농식품부, 감염 개체 관리 방안
유기묘에만 적용… 반려묘 예외
“국민 정서 감안해서 원칙 바꿔”
보호소선 “관리자 있는데 차별”
“감염병 특성 맞게 대응을” 지적

“내가 이러려고 애들(길고양이) 살려내려고 그렇게 노력했나.”

서울 관악구 소재 민간 보호소에서 돌보던 고양이 세 마리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항원이 확인돼 지난달 30일 안락사됐다. 제1종 법정전염병인 고병원성 AI 감염축은 살처분한다는 원칙에 예외를 둘 수 없다는 농림축산식품부의 방침에 따라서다. 며칠 후 농식품부가 가정에서 기르는 반려묘는 예외로 한다는 방침을 밝혀 일선 지방자치단체는 혼란스러워했다.

 

경기도 여주시 '경기 반려마루 여주'에서 수의사가 고양이 코와 입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검사를 위한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29일 길고양이 등을 보호하는 관악구 한 민간 보호소 고양이 중 세 마리에서 AI 바이러스 양성 반응이 나왔다. 앞서 지난달 24일에는 서울 용산구 보호소에서 집단으로 폐사한 고양이 38마리의 사인을 조사한 결과 두 마리가 고병원성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초유의 사태에 서울시 동물보호과는 감염 개체 관리 방안 마련을 위해 29일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농식품부 조류인플루엔자방역과 등과 마라톤 회의를 벌였다. 시는 가급적 안락사 대신 격리치료 등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 주무 부처인 농식품부는 ‘가축전염병 예방법’(가전법)에 따라 살처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고병원성 AI에 걸렸거나 걸렸다고 여길 만한 역학조사·정밀검사 결과나 임상 증상이 있는 경우 살처분을 명해야 한다는 명시적 조항 때문이다. 30일 오후 관악구 공수의 입회하에 한 동물병원에서 세 마리를 안락사했다.

농식품부는 지난 2일 새로운 입장을 내놨다. 살처분 원칙에도 개인이 소유한 반려묘는 살처분하는 대신 각 지자체 격리 시설에서 관리하고, 보호소 등의 고양이는 감염 사실이 확인될 경우 안락사한다는 방침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의 경우 안락사를 강제적으로 하는 것은 국민 정서를 감안하면 다른 판단을 해야 한다는 내부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살처분의 예외 인정에 대해, 서울시 일선 부서에선 ‘환영한다’면서도 ‘명확한 기준 정립이 필요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시 동물보건팀 관계자는 “관악구 고양이 처리 논의 때는 살처분의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던 농식품부의 원칙이 며칠 사이 바뀐 점이 의아하다”면서도 “감염 개체를 안락사하지 않을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 준다면 그에 따라 동물을 구하기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민간 보호소도 엄연히 관리자가 있고, 보호소의 고양이라고 해서 집고양이와 안락사 기준을 달리해서는 안 된다”며 “보호소 동물도 반려묘와 마찬가지로 치료의 여지가 있다면 격리해 돌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악구 보호소의 관리자는 안락사 이후 ‘내가 이러려고 그간 애들(길고양이)을 살리려 그렇게 노력했느냐’며 크게 좌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정책팀장은 “격리 어려움과 확산 위험 등을 이유로 보호소의 고양이는 무조건 안락사하고 반려묘는 치료하는 것이라면, 보호소만큼 여러 마리를 기르는 가정에 대해선 어떤 조치를 취할지 의문”이라며 의아함을 표했다. 그러면서 “고양이 AI 발생이라는 흔치 않은 사태에 농식품부가 과학적 기준을 제시하기보다 허둥지둥하고 있다는 인상”이라며 “포유류 간 AI의 감염력이 극히 낮은 것으로 보고된 만큼, 보호소의 고양이라고 해서 무조건 안락사하기보다 감염병의 특성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