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보다 평균 신장이 훨씬 작아도, 팀 내 연봉 1,2위인 황민경(4억5000만원)과 김희진(3억5000만원)이 없어도 이겼다. IBK기업은행이 높이 열세를 만회하는 발 빠른 배구로 KGC인삼공사를 꺾고 KOVO컵 결승에 진출했다.
김호철 감독이 이끄는 IBK기업은행은 4일 경북 구미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2023 구미·보드람컵 프로배구대회 준결승 2경기에서 안정된 리시브를 바탕으로 표승주(24점)-육서영(20점) ‘쌍포’의 공격이 불을 뿜으며 KGC인삼공사를 3-1(19-25 25-19 25-18 25-19)로 이겼다.
2013년과 2015년, 2016년까지 세 차례 KOVO컵 정상을 차지했던 IBK기업은행은 7년 만에 다시 KOVO컵 결승 무대에 복귀했다. 5일 열리는 결승에서 GS칼텍스와 만나 7년 만에 통산 네 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KGC인삼공사는 세터 염혜선(177cm)과 리베로 노란(167cm)를 제외한 주전 5명이 모두 180cm를 넘는 장신팀이다. 주전 미들 블로커 정호영과 박은진이 190cm, 187cm이고, 아포짓 스파이커 이선우가 184cm, 아웃사이드 히터 고의정과 박혜민도 181cm다.
반면 IBK기업은행은 주전 미들 블로커로 나선 김현정과 최정민이 상대 아웃사이드 히터보다도 작은 180cm, 179cm다. 이를 의식한 듯 경기 전 김호철 감독은 “높이가 좋은 팀이라 붙기 때문에 부담은 된다. 리시브가 잘 되면 세터인 (김)하경이게 맡겨야 하지 않겠나. 한 발 더 빠른 플레이를 가져가면 상대의 장신을 뚫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내건 조건대로, IBK기업은행의 1세트 리시브 효율은 무려 59.09%에 달할 정도로 안정됐다. 그러나 1세트를 19-25로 패했다. 공격 성공률이 28.57%, 공격 효율이 14.29%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KGC인삼공사의 장신 블로킹숲이 셧아웃 시킨 블로킹은 3개였지만, 바운드시킨 유효 블로킹이 12개에 달했다. 아무리 리시브가 잘 되어도 공격을 성공시켜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 유효 블로킹된 공은 KGC인삼공사의 반격으로 연결됐다.
김 감독은 2세트 작전 타임 때 “리시브가 잘 되어도 공격이 상대 블로킹에 바운드가 되면 의미가 없다. 이를 막으려면 한 발 더 빠르게 뛰어서 상대 블로킹이 갖춰지기 전에 공격을 해야 한다. (김)하경이가 더 빠르게 토스를 주고, 공격수들도 한 발 더 빠르게 뛰어라”고 지적했다.
김 감독의 경기를 꿰뚫어보는 눈은 정확했다. 김하경의 토스워크가 눈에 띄게 빨라졌고, 공격수들의 준비 동작도 스피디해졌다. 갑자기 달라진 IBK기업은행의 공격에 KGC인삼공사의 장신 블로커들은 당황했다. 2세트엔 KGC인삼공사의 유효블로킹은 1세트의 절반인 6개로 줄었다. 3세트에도 6개에 불과했다. 그만큼 KGC인삼공사의 블로커들이 손쓸 틈을 덜 주고 IBK기업은행의 공격이 빠르게 이뤄졌단 얘기다.
2,3세트를 잡아내며 기세를 탄 IBK기업은행은 4세트엔 초반부터 달아나며 12-6까지 일찌감치 리드를 벌리며 승기를 잡았고, 안정적으로 리드를 지켜내며 4세트도 잡아내며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
살림꾼 역할을 위해 거액을 주고 데려온 황민경의 부재에도 IBK기업은행의 리시브는 안정됐고, 공격도 강했다. 표승주와 육서영이 상대 서브를 받아가면서 공격에서도 주포 역할을 확실히 해줬다. 단신 미들 블로커 김현정(9점)은 양 팀 통틀어 최다인 4개의 블로킹을 성공시키며 ‘블로킹은 키로만 하는 게 아니다’라는 걸 보여줬다. 또 다른 단신 미들 블로커 최정민(8점)도 블로킹은 2개에다 공격에서도 제 몫을 다 하며 날개 공격수들의 부담을 덜어줬다. 코트에 선 모두가 유기적으로 돌아갔기에 가능했던 IBK기업은행의 승리였다. 심지어 신장의 큰 열세에도 팀 블로킹에서 11-9로 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