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호철 매직’이 따로 없다. 상대와의 신장 격차를 극복할 수 있는 경기 내에서의 지적, 이것이 명장을 사령탑으로 쓰는 이유다. IBK기업은행 선수들이 김호철 감독의 주문을 100% 수행해내며 7년 만에 KOVO컵 결승 무대에 올랐다.
IBK기업은행은 4일 경북 구미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2023 구미·보드람컵 프로배구대회 준결승 2경기에서 안정된 리시브를 바탕으로 표승주(24점)-육서영(20점) ‘쌍포’의 공격이 불을 뿜으며 KGC인삼공사를 3-1(19-25 25-19 25-18 25-19)로 이겼다.
2013년과 2015년, 2016년까지 세 차례 KOVO컵 정상을 차지했던 IBK기업은행은 7년 만에 다시 KOVO컵 결승 무대에 복귀했다. 5일 열리는 결승에서 GS칼텍스와 만나 7년 만에 통산 네 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승부의 분수령은 2세트였다. 1세트에 리시브 효율 59.09%에 달할 정도로 리시브는 안정됐던 IBK기업은행은 정작 공격 성공률은 리시브 효율에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28.57%. 공격 효율은 이를 또 반토막한 14.29%에 불과했다.
KGC인삼공사는 세터 염혜선(177cm)과 리베로 노란(167cm)를 제외한 주전 5명이 모두 180cm를 넘는 장신팀이다. 주전 미들 블로커 정호영과 박은진이 190cm, 187cm이고, 아포짓 스파이커 이선우가 184cm, 아웃사이드 히터 고의정과 박혜민도 181cm다. KGC인삼공사의 장신숲은 상대의 공격을 블로킹으로 덮었고, 유효블로킹이 12개에 달하며 상대 공격 성공률을 뚝 떨어뜨리며 1세트를 가져왔다.
2세트 초반에도 이런 경기 양상이 지속되자 김 감독은 작전 타임을 불렀다. 세터 김하경에게 상대 블로킹이 공격을 덮지 못하도록 빠른 토스를 해줄 것을 주문했다. 공격수들도 빠른 토스를 받을 수 있게 준비동작과 공격을 빠르게 해줄 것을 주문했다.
김 감독의 지도는 100%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IBK기업은행의 세터와 공격수들이 빠르게 유기적으로 움직이자 KGC인삼공사의 유효블로킹 개수는 2,3세트에 1세트의 절반인 6개로 뚝 떨어졌다. 이는 곧 IBK기업은행의 공격 성공률이 올라가는 것을 의미했다.
경기 뒤 인터뷰실에서 만난 김 감독은 “(김)하경이 토스가 1세트에 빠르지 않았다. 그래서 2세트에 하경이에게 ‘이렇게 하면 어차피 진다. 모험을 걸자. 상대방 블로킹이 높으니 조금만 공격이 늦어도 블로킹을 덮으니, 양 사이드로 빨리 빼라. 그리고 중간중간 속공을 섞어서 상대 블로킹을 교란시켜라’라고 얘기했다. 이게 먹히면서 경기를 뒤집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결승 상대는 GS칼텍스다. 조별예선에선 IBK기업은행이 3-0으로 완승을 거뒀다. 차상현 GS칼텍스 감독은 당시 패배를 두고 “사령탑 부임 후 이렇게 경기가 안 풀린 게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라고 평할 정도였다.
김 감독은 “제대로 맞붙으면 우리가 불리하다. 조별예선 땐 내가 벤치에서 봐도 ‘쟤네 왜 저러냐’할 정도로 GS칼텍스가 안 됐던 날이다. GS칼텍스가 오늘 준결승 현대건설과의 경기 때처럼 하면 우리가 불리하다”라고 엄살을 부렸다. 김 감독에게 차 감독의 발언을 전하자 김 감독은 “내일은 질게요. 저희들은 우승 안 해도 됩니다. 내일은 우승 안 해도 된다. 그냥 선수들이 재미있게 하면 좋겠다. 내일 그냥 벤치에 앉아버릴까 싶다”고 농을 던졌다.
김호철 감독과 IBK기업은행의 ‘행복배구’는 어떤 결말로 끝이 날까. 승부사 기질로 따지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김호철 감독이 결승전에서 보여줄 묘수는 무엇일까. 전력 열세를 딛고 IBK기업은행이 7년 만의 KOVO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