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버텼는데… 빚 폭탄에 파산 속출 [심층기획-벼랑 끝 몰린 자영업자]

(상) 빚으로 돌아온 코로나

빌린 돈에 막대한 이자 압박
한계 다다른 채무자 더 늘듯

소상공인 영업 손실 고스란히 빚으로
상반기만 6만191건… 10년 새 최대치
‘코로나 대출’ 상환 유예도 9월 종료
공적자금 지원 등 손실보상 요구 커져

비은행권 대출 비율 2년 새 6%P나 늘어
소득 하위 30% 악성 부채도 매년 증가
대환대출 등 정부 땜질식 처방 도마 위
전문가들 “회생·파산절차 간소화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절망의 끄트머리가 보이기 시작하던 지난해 6월. 대전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김동현(45·가명)씨는 법원 문을 두드렸다. 매출 악화 속에서 가게를 지키기 위해 여기저기서 빌린 돈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빚으로 불어나서다. 김씨는 결국 개인회생절차를 밟기로 했다.

 

결혼식에 사용되는 꽃을 주로 팔던 김씨 가게는 코로나19로 인해 유독 타격이 컸다. 은행 대출에 단기카드대출까지 받으며 버티려 했지만, 대출 원금은 2억8000만원까지 쌓였고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만 200만원을 넘어섰다. 한 달 내내 일해도 이자 갚기조차 벅찼다. 법원에서 회생계획을 인가받은 김씨는 앞으로 5년간 매월 버는 수익에서 최저생계비를 뺀 돈을 채권자에게 갚기로 했다.

 

코로나19로 불어난 빚과 경기 불황에 직면한 자영업자들이 경제적 파탄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일 서울 명동거리 상가에 임대 안내문이 걸린 모습이다. 이제원 선임기자

6일 서울회생법원이 펴낸 ‘2022년 개인회생사건 통계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개인회생을 신청한 채무자 채무 총액 중위값이 두 해 연속 오름세를 기록했다. 2020년 7484만원에서 이듬해 8524만원으로 13.9% 오른 데 이어, 지난해에도 8871만원으로 4.1%가 늘었다.

 

코로나19의 터널을 지나왔지만 김씨와 같은 자영업자의 고통은 끝나지 않고 있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지난 2년간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이 막대한 이자와 함께 몰려오면서 경제적 파탄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벤트 사업을 운영하는 노희원(33·가명)씨도 7000만원의 빚을 떠안았다. 경기 불황이 길어지자 대출로 대출을 막는 ‘돌려막기’ 방식을 쓸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빚이 늘어났다. 원리금 상환액은 월 300만원에 달했다. 임대료도 월 270만원이나 됐다.

 

살던 집을 처분하고 사업장에서 생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최근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전 재산으로도 모든 채무를 변제할 수 없는 ‘파산사건’에서도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2022년 개인파산사건 통계조사’에서 ‘사업실패 또는 사업소득 감소’가 원인인 경우는 2021년(52.6%)과 2022년(44.7%) 모두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한계에 다다른 채무자 숫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공적 지원을 늘리고, 채무조정 제도를 정비해 이들의 재기를 도와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개인회생 역대 최대치 기록

 

통계상 ‘영업소득자’로 분류되는 자영업자는 월급을 받는 ‘급여소득자’보다 월수입은 적고, 빚은 더 많았다. 지난해 서울회생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자영업자의 채무 총액 중위값은 1억1402만원으로 급여소득자(8508만원)보다 34%가량 많았다. 전체 채무자 중 월수입이 150만원 이하인 경우는 13% 수준인데 자영업자는 그 비율이 25.5%에 달했다. 이렇다 보니 변제율이 30% 미만인 자영업자는 52.4%로 전체 개인회생 채무자(37.1%)를 크게 웃돌았다.

 

문제는 경제적 파탄에 직면한 이들이 올해 들어 더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1∼6월 사이 전국 법원에 접수된 개인회생 신청이 6만19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만1787건)보다 44.0% 늘었다. 관련 법원통계가 작성된 2013년 이후 최대치이기도 하다. 통상 개인회생이 연말에 집중되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접수되는 도산 사건이 더욱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코앞에 닥친 ‘시한폭탄’도 있다. ‘코로나 대출’의 원리금 상환유예가 다음 달 종료를 앞두고 있어 부실 폭탄이 터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 조치는 2020년 4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상환 부담을 덜기 위해 한시적으로 시행됐고, 6개월 단위로 수차례 연장됐다. 올해 3월 말 기준 상환유예 및 만기연장 이용금액은 85조3000억원, 차주는 38만8000명에 달한다.

 

◆부채로 돌아온 코로나19

 

자영업자가 한계 상황에 내몰린 데에는 이들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불공평하게 떠안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펴기 위해 영업제한 또는 금지 조치를 하면서도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영업손실을 제대로 보상하지 않았고 고스란히 개인의 부채로 남았다는 것이다.

 

지난 3일 음식점 등이 밀집한 서울 종각 젊음의거리 모습. 연합뉴스

코로나19 전후로 급격히 증가한 부채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의 대출은 약 1020조원으로 추산됐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말(684조9000억원)보다 335조원이나 늘어난 수치다.

 

악성 부채가 늘고 있는 점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참여연대가 한국은행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전체 자영업자 중에서도 소득 하위 30%에 해당하는 저소득자의 부채 증가율이 2020년(22.3%)부터 2021년(17.3%), 2022년(18.1%)까지 20% 안팎을 유지하고 있어 10%대인 전체 증가율보다 컸다.

 

자영업자 부채 중 비은행권 대출 비율도 2022년 말 39.3%를 기록해 2년 만에 6%포인트 늘었다. 주로 저신용자가 금리가 높은 비은행권 대출을 이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채의 질이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체 자영업자의 대출잔액 중 다중채무 비율이 70.6%에 달하고, 취약차주가 보유한 부채액이 100조원을 넘는 것도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정부가 공적자금 지원을 확대해 코로나19 손실 보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악화할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보다 부채로 인한 소상공인의 경제활동 불능 상황을 더 걱정해야 할 시점”이라면서 “완전한 탕감 내지는 채무 불이행에 대한 불이익 삭제 등의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진=뉴스1

◆회생·파산 절차 간소화해야

 

도산 전문가들은 법원의 회생이나 파산 같은 공적 채무조정제도의 문턱을 낮춰 채무에 시달리는 자영업자의 재기를 도와야 한다고도 말한다. 박현근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장은 “올 하반기 자영업자 중 한계채무자가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환대출 방식의 땜질식 처방에 급급하다 보면 채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폭탄 돌리기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적 채무조정제도가 사회적 낙인과 복잡한 신청 과정 때문에 외면받고 있다면서 서류 제출을 간소화하고 면책을 받기까지의 지연 문제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난 6월 열린 도산법연구회 심포지엄에서도 개인이 도산절차에 접근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서울회생법원 황성민 판사는 소속 법원에서 ‘뉴스타트 상담센터’를 통해 연간 2000명 이상이 개인회생·파산을 상담받는다면서도 “채무자의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하지 못한 채 상담이 진행돼 적합한 절차를 안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회생법원은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채무자가 신분증만 갖고 상담센터에 방문하면 재산·직업·소득 등에 관한 행정정보와 채무 내역 등 신용정보를 전송받도록 하는 서비스를 추진 중이다.

 

일각에선 개인 파산·회생을 신청하기 전 의무적으로 법원이 아닌 기관에서 신용상담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이런 사전 절차는 신속한 권리구제를 제약하고 채무자가 법원에 곧바로 도산 절차를 신청할 수 없도록 해 사법접근성을 제한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