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역 사건 후 온라인서 194건… ‘살인예고’ 온상된 온라인 공간

피의자 두 명 중 한 명꼴로 10대
흉흉한 민심타고 사회불안 확산

온라인 관련 사진·위협 글 무차별 확산
“유행 동참” 주목받고 싶은 심리 자극

‘나만 불행’ 열등감·망상 공유하다 보면
그릇된 영웅화로 실제범행 단행 가능성
온라인 플랫폼 필터링 등 규제강화 시급

서울경찰청, ‘긴급 스쿨벨’ 3호 발령
살인 예비혐의 적용 등 엄벌 재확인

서울 신림역과 경기 분당 서현역에서 일면식 없는 무고한 시민을 상대로 한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사이버 공간이 무분별한 ‘살인 예고’ 글로 얼룩지고 있다. 일상을 침범한 흉악 범죄에 이어 전국 각지 살인 예고까지 겹치면서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약 2주일 동안 구체적인 일시와 장소를 명시한 위협 글이 경찰에 확인된 것만 200건에 육박했다. 검거된 이들 중 절반가량이 10대였다. 살인 예고 대부분이 장난이나 허위 사실로 밝혀지고 있지만, 사소한 트리거 하나에도 모방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엄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7일 잇단 흉기 난동 예고로 경찰이 대구 공항에서 특별치안활동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7일 오후 6시 기준으로 살인 예고 글 194건을 접수해 65건을 검거하고 3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붙잡힌 피의자는 2명 중 1명꼴로 10대 청소년(34명)이었다. 이 중에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현상은 신림역 사건 때 유출된 폐쇄회로(CC)TV 영상과 현장 사진, 연이은 흉기 난동 위협 글 등이 온라인에서 무차별 공유되면서 이를 보고 주목받고 싶은 사람들을 자극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흉흉한 사회 분위기 아래 살인 예고가 하나의 놀이 문화(meme: 모방 형태로 인터넷을 통해 확산하는 문화적 유전자)처럼 번졌다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적발되는 살인 예고 글 작성자 대부분은 10대 또는 20대다. 성별 통계의 경우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할 수 있어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문제가 되는 글 제보가 잇따르는 곳은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남초 커뮤니티, 인스타그램 등 익명 사용이 일반적인 공간이다. 내용은 “○○역에서 몇 시에 몇 명을 죽이겠다” 같은 간단한 문장과 흉기 사진 등으로 구성됐다. 사태가 커지자 일부 작성자는 “장난이었다”며 자진 사과 글을 올리기도 했고, 온라인에 떠도는 흉기 사진을 도용한 글도 확인됐다.

 

특히 “나도 유행에 동참한다”와 같은 문장에서 ‘유행’이라는 단어 사용을 통해 이런 글을 올리는 이들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자극적인 내용으로 관심을 끌고 많은 이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미로 해석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장)는 “10대들은 스스로 법의 저촉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고, 자아 과시나 권력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인 예고 글을 올리는 것으로 보인다”며 “문제는 100명이 장난으로 올렸을지라도 1∼2명이 실제로 실행할 때 막대한 인명 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재미를 쫓아 원하는 걸 표출할 자유는 국민의 안전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적으로 '살인 예고'가 속출하고 있는 7일 대구 중구에서 한 시민이 '살인 예고'를 정리해 알려주는 웹사이트에서 실시간 예고 글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살인 예고 글이 범람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의 자율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예를 들어 신림동 사건 피의자에 대해 보도 등을 통해 불필요한 서사가 부여되면서 이를 추종하는 여론이 온라인에서 생겨났고, 이를 걸러 내지 못하다 보니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단 설명이다. 신림동 사건 이후 서현역 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이를 조기에 끊어 내지 못하면 모방 범죄를 또 부추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프로파일러)는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조선이 ‘불행해서 그랬다’는 진술이 퍼지며 ‘그릇된 영웅화’가 이뤄진 것”이라며 “‘사회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열등감과 망상 등을 공유하다 보면 온라인에서 글을 쓰던 이들이 모방 범죄로 나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 교수도 “일부 온라인 플랫폼들은 익명성과 표현의 자유를 방패막이로 삼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 현 사태의 하나의 배경”이라며 “살인 예고 글처럼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의도의) 글들은 자동 삭제하는 식의 필터링은 대형 포털에서 이미 이뤄지고 있는 만큼, 다른 온라인 플랫폼들도 자율 규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경찰청은 이날 관내 1407개 초·중·고등학교 학생과 교사, 학부모 83만명에게 긴급 스쿨벨 3호를 발령했고 학교전담경찰관(SPO)이 학생들의 훈육을 강화하도록 지시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청 생활안전기능에서 각 시도청에 요구해 청소년 모방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교육 당국과 학교, 지역 맘카페 등을 통해 범죄 예비 예고 글을 올리는 행위가 중하게 처벌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초등생이… 학교에 칼부림 예고 글 한 온라인 게임 채팅방에 ‘내일 울산 북구의 A 초등학교에서 칼부림 예정’이라는 게시물이 올라와 7일 이 학교가 하루 휴교한 가운데 경찰이 학교 앞을 순찰하고 있다. 예고 글을 올린 초등학생은 이 학교 학부모의 신고로 검거돼 이날 보호자와 함께 조사받았다. 울산=뉴스1

경찰은 청소년의 게시 비율이 상당히 높다며 “단순한 장난에서 시작된 글이 이웃과 사회에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평온한 일상의 회복을 위해 작성·유포 행위를 반드시 멈춰 달라”고 당부했다. 살인 예고 글 게시 행위는 협박죄(특수협박죄) 등으로 강력하게 처벌될 수 있으며 구체적 범행을 준비한 사실이 확인되면 살인예비 혐의를 적용한다는 등 엄벌 입장도 재확인했다. 살인 예고 글 작성자의 살인예비죄 적용과 관련해서는 “살인예비가 되려면 최소한 대상자가 특정돼야 하고, 법리 판례가 형성된 부분이라 조심스럽다”면서도 “대상자를 불특정했더라도 시간과 장소가 특정되는 등 한정되는 기준이 있으면 과감하게 협박죄를 의율해도 문제없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폭력 사범 검거 과정 등에서의 물리력 행사에 대해 정당행위·정당방위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한 장관은 “범인 제압 과정에서 유형력을 행사했다가 폭력 범죄로 처벌된 일부 사례들 때문에 경찰 등이 흉악범을 제압하기 위한 물리력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는 우려가 있다”며 “검찰은 긴박한 상황에서 물리력을 행사한 경찰 및 일반 시민에 대해 위법성 조각 사유와 양형 사유를 더욱 적극적으로 검토해 적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위법성 조각 사유란 범죄 요건을 갖췄지만 실제로는 위법을 인정하지 않는 특별한 사유를 말한다.

 

한편, 시민들이 느끼는 두려움이 커지면서 흉기 난동과 관련해 오인 신고와 해프닝도 계속되고 있다. 전날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에서는 ‘가스 냄새가 난다’, ‘난동범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와 승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발생하면서 “생화학 테러·칼부림이 났다”는 미확인 괴담이 퍼지기까지 했으나 오인 신고로 결론 났다. 경남 사천시와 진주시, 경기 의정부시 등에서도 각각 ‘흉기를 든 거동 수상자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가 모두 오인 신고로 판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