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8명 중 1명만 지역사회 관리… “지원체계 강화 필요” [정신질환자 대응책 ‘헛바퀴’]

전국 260곳 광역·기초 정신건강센터
양극성 장애 환자 등록률 20명 중 1명
우울 장애 환자 더 낮은 100명 중 1명

센터 존재 자체 모르는 경우가 많고
인력난 심각… 체계적 관리도 어려워
전문 요원 1명당 27명 담당 ‘과부하’
“입원 치료 관리 시스템 구축이 우선”

최근 ‘묻지마 범죄’로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체계 허점이 드러난 가운데 조현병이나 망상장애로 치료받은 환자 8명 중 1명만이 지역사회에서 정신건강 관리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약계층에게 정신건강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인력 부족 등으로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쉽지 않다. 의료기관에서 치료받거나 위험행동을 보인 정신질환자가 지속해서 관리를 받을 수 있게 지역사회 내 지원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잇단 흉기 난동에 순찰 강화 경찰관 2명이 8일 서울 지하철 강남역 인근에서 순찰을 돌고 있다. 잇따른 지하철역 칼부림 사건으로 묻지마 범죄에 대한 시민들의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남정탁 기자

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정신의료기관에서 치료받은 조현병과 망상장애 환자 가운데 지역사회에서 제공하는 정신건강증진사업을 이용하는 환자의 비율은 0.13명이다. 조울증으로 알려진 양극성 장애 환자 등록률은 0.05명, 주요 우울장애 환자의 등록률은 그보다 더 낮은 0.01명이었다.

전국에 있는 광역형 정신건강복지센터 16곳과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 244곳은 주민들에게 정신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 등 정신건강전문요원이 중증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가정방문이나 전화상담, 정신재활훈련 등의 서비스를 지원한다. 2021년 기준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한 정신질환자는 7만9446명이고, 이 중 4만3368명이 성인 중증 정신질환자로 분류된다. 조현병이 2만4160명으로 가장 많고, 중증도 이상 우울 에피소드 및 재발성 우울장애 1만963명, 제1형 및 제2형 양극성장애 5981명 등 순이다.

정신질환자 특성상 의료기관이나 복지기관을 통해 연계된 환자들이 대다수고 자발적으로 센터를 찾는 환자는 거의 없다는 게 센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환자가 환청이나 망상 등으로 흉기를 들고 다니거나 마트에서 소란을 피워 누군가에게 신고돼 경찰 등을 거쳐 의료기관의 치료를 받은 경우다.



치료 이후 지역사회에서 환자를 지속해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역할이 큰데 인지도도 낮을뿐더러 사람도 부족해 제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만15∼70세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39.4%)은 정신건강복지센터를 ‘모른다’고 답했다. ‘이름만 알고 있다’는 응답(37.3%)을 합하면 센터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응답자는 76.7%에 달한다.

지난 7일 경기도 성남시 서현역 한 대형 백화점 인근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서 시민들이 지난 3일 발생한 '분당 차량 돌진 및 흉기 난동'으로 사망한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난심리지원과 알코올·도박·마약 중독 등 지원 서비스의 범위는 계속 늘어나는 데 반해 인력이 적은 것도 문제다. 전문요원 1명당 담당하는 대상자는 26.5명이다.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중증정신질환 사업 말고도 아동청소년, 자살예방, 정신건강증진, 알코올·중독, 재난관리사업 등을 운영한다. 박찬호 동두천시정신건강복지센터 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통화에서 “선진국처럼 사회복지사 1명당 담당하는 환자 수가 적은 게 아니어서 방문 등 사례관리 횟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에서의 정신질환자 관리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국가가 나서 입원치료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 센터장은 “센터에서 중증 정신질환자들의 행동을 예측하고 치료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약물을 중단한 환자들에게 투약을 강제할 방법도 없기 때문에 폭력성을 보이는 환자의 입원 등 지역사회 내 개입이 원활히 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