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이 성능이 떨어지는 방탄복을 장병에게 지급하거나 남은 예산을 처리하기 위해 성능 시험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방탄헬멧을 납품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어제 발표한 ‘방탄물품 획득사업 추진실태’ 감사 결과다. 감사원은 육군군수사령부 과장 1명의 정직 징계 처분을 요구하고 6건에 대해선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육군본부에 주의 또는 통보 조치했다. 이렇게 허술하기 짝이 없는 획득사업으로 확보한 방탄물자가 장병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방탄복은 임무에 따라 기능이 달라야 한다. 함정 근무 장병에게는 해수 방수 기능을 갖추고 물에 뜨는 부력 방탄복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해군과 해병대는 담수 방수 기능의 일반 방탄복을 입고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장기간 해수 노출 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방탄복의 방호 기능에 대한 기준조차 없다. 지난 5월 감사원 감사에서는 장병들이 사용하는 방탄복 4만9000여벌 중 다수가 군이 요구하는 방탄 성능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부 방탄복은 아예 총탄에 관통될 정도였다.
군이 불용 예산을 남기지 않으려는 등 이유로 경량 방탄헬멧을 품질검사도 하지 않은채 납품부터 받았다는 감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선납품·후검사는 계약 후 국가재난이나 천재지변 등 극히 제한된 경우에 가능하다. 육군본부는 2021년 12월 이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경량 방탄헬멧에 대한 선납품·후검사를 요청했고, 방위사업청은 적정성을 확인하지 않고서 이를 승인했다. 그러니 특수전사령부에 납품된 경량 방탄헬멧 수천개에서 결함이 발생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육군군수사령부 A과장은 완제품 품질검사 결과 공문서를 허위로 작성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니 내용연수는 9∼15년인데도 보급된 지 20년이 지난 부력방탄복이 여전히 작전에 활용되고 내피에 구멍이 뚫려 방수 기능이 훼손된 방탄복이 부대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고서도 예상치 못한 위급상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군수물자 납품이나 획득을 놓고 잊을 만하면 비리나 부실 행정이 적발되니 답답한 노릇이다. 그동안 수차례 수사기관과 감사원에 적발되고서도 미봉책으로 모면해 왔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군은 언제 있을지 모를 전시상황에 대비해 존재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국가의 존망과 직결된다. 언제든지 최상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임기응변식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