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도 극단 선택 선생님 추모 화환 지킨 중학생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경기도 의정부 한 초등학교에서 2021년 6개월 간격으로 초임교사 김은지(사진 왼쪽)씨와 이영승(〃 오른쪽)씨가 극단 선택을 했다. 유족은 더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며 교사들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했다. MBC 보도화면 갈무리

 

두 명의 은사가 극단 선택을 한 사실을 2년 만에 알게 된 학생이 태풍 속 선생님의 화환을 지켰다.

 

8일 MBC 보도 이후 경기 의정부 한 초등학교 주변에는 화환이 줄지어 세워졌다.

 

당시 MBC는 6개월 간격으로 두 명의 초임교사가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을 전했다. 여성 교사 김은지(당시 23세)씨는 2021년 6월에, 같은 해 12월에는 남성 교사 이영승(당시 25세)씨가 극단 선택을 했다. 두 사람 모두 4~5년차 초임교사였다.

 

학부모 악성 민원이 최근 화두로 오르면서 유족이 진상 규명을 요청했고, 이 사실이 보도되면서 학교 앞에 화환이 늘어선 것.

 

11일 뉴스1에 따르면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10일 오후 화환 상태는 좋지 않았다. 학교 측에서 끈으로 화환을 묶어두긴 했으나 거센 비바람에 일부 화환은 뒤로 넘어가거나 옆으로 쓰러졌고 상당수 꽃들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이날 중학생 A양이 화환의 흐트러진 꽃과 근조문구가 적힌 리본을 정돈하고 있었다. A양은 수백개의 화환을 일일이 손으로 정리하며 ‘추모 문구’가 잘 보이게 펼쳤다.

 

해당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A양은 “얼마 전 뉴스를 보고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3일째 방문해 추모하고 있다”며 “재작년 6월 김은지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 학교에서는 ‘김 선생님이 아프시다’고만 학생들에게 설명했고 이후 다른 교사로 대체된 뒤 선생님 소식을 더는 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 이영승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학교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학생들에게 설명했다”며 “평소에 우리들에게 화도 한번 안 내셨고 친절하고 착한 선생님들이었는데 너무 당황스럽고 슬프다”고 이야기했다.

10일 오후 3시50분께 경기 의정부시 한 초등학교 앞에는 조화가 줄지어 서있다. 전국 각지에서 보내진 화환에는 두 교사의 사망과 관련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뉴스1

 

한편, MBC 보도에 따르면 교육청에 학교가 보고한 두 교사의 사망 원인은 모두 ‘단순 추락사’였다. 유가족들은 두 교사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고, 더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해달라고 하면서 2년여 만에 사건이 알려지게 됐다.

 

김 교사는 발령 한 달 만에 우울증 진단을 받아 학교에 사직서를 냈지만 학교가 이를 만류, 음악 전담 교사로 발령했다. 하지만 1년 뒤 다시 담임을 맡아야 했다.

 

이후 여러 일을 겪으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몇 차례 병가를 냈던 김 교사는 2021년 5학년 담임을 맡은 지 4개월째 극단 선택을 했다.

 

김 교사 아버지는 “퇴근해서도 학부형들한테 전화받는 걸 수시로 봤다”며 “애가 어쩔 줄 몰라서 ‘죄송합니다’(라고만 말했다). 전화받는 걸 굉장히 두려워했다”고 밝혔다.

 

이 교사 역시 학부모 항의에 시달리며 괴로워했다. 부임 첫 해에는 페트병 자르기를 하던 아이가 손을 다치는 일이 있었는데 해당 학부모가 아이의 성형수술 비용을 요구했다. 이 교사가 이듬해 휴직하고 입대를 한 뒤에도 군대에까지 전화해 항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교사 아버지는 “학교 측은 되레 아들한테 (학부모와) 연락해 해결하라고, 아니면 돈을 주든가 해서 전화 안 오게 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 교사가 다시 5학년 담임을 맡은 2021년 학급에서 따돌림이 발생했다. 따돌림 당한 학생의 학부모는 이 교사에게 수시로 문자 등 연락을 취했는데 확인된 메시지만 400건이다.

 

해당 학부모는 “왜 자신의 얘만 이렇게 당해야 되냐. 선생님은 그거 아시면서도 왜 맨날 그렇게 처리를 하셨냐’며 공개 사과를 하라”고 요구했다.

 

이 교사는 어느 날 민원을 받은 직후 새벽에 ‘이 일이랑 안 맞는 거 같다. 하루하루가 힘들었다’는 마지막 글을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교사 아버지는 “(학교 측은) 문제 있는 학부모라는 걸 알면서도 학부모에게 그냥 ‘담임(이 교사)과 해결하라’는 말만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보도 이후 경기지역 교원단체는 두 교사의 사망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고, 경기도교육청은 학교 감사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