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튜버 통해 핵심만 쏙쏙… 독서인가, 시청인가 [S 스토리]

유튜브로 종이책 소비하는 사람들

고전·소설부터 경제·자기계발서까지
내용 요약해 알려주고 작품 해석 제시
활자보다 영상 친숙한 MZ세대 선호
10대 20% “유튜브로 보는 것도 독서”

북튜버와 협업해 홍보·작가와 북토크
출판사 자체 유튜브 채널 개설 잇달아
전문가 “종이책 함께 읽어야 깊은 이해”
부적절 해석·원작자 권리 침해도 유의

서울 강남에 사는 회사원 정모(45·여)씨는 매일 아침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주로 경제 경영서 중심으로 책 내용을 소개하고 핵심 개념을 정리해주는 영상들이다. 책 소개를 전문으로 하는 북튜버(북+유튜버)의 영상클립을 자주 이용하지만, 유명 유튜브 채널 안에 포함된 책 소개 코너도 이용한다. 대체로 10~20분 정도로 책 내용을 요약하는 영상이 많지만, 때론 한 시간을 훌쩍 넘는 영상도 적지 않다. 아침 시간뿐 아니라 출퇴근, 퇴근 후 쉴 때도 자주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책을 접하고 공부한다.

정씨는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차분히 책을 읽기가 쉽지 않은 환경인데, 유튜브를 활용하면 시의에 맞는 책을 소개받을 뿐 아니라 책 내용도 알 수 있다”며 “유튜브를 잘 활용하면 부족한 독서를 메우면서 독서 효과를 충분히 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취준생 김모(25·서울 남현동)씨는 이동하거나 잠자기 직전에 유튜브로 헌법과 행정기본법 등의 법조문을 공부한다. 취업준비 초기에는 간이 법전을 구입해 공부했지만, 학원 강사의 추천으로 법조문을 읽어주고 설명까지 해주는 유튜브를 시청하게 됐다. 김씨는 “법조문을 책으로 읽으면 이상하게 집중이 잘 안 됐는데, 법조문을 읽어주는 유튜브를 보고 들으며 공부하면 훨씬 집중이 잘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튜브로 책을 소비하는 사람들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종이책이 아닌 유튜브를 통해서 책을 읽고 소비하는 경향이 확산하고 있다. 젊은층은 활자보다는 영상이 친숙한 세대인 데다 최근에는 접근할 수 있는 영상 콘텐츠도 많이 늘어나면서 영상을 통해서 책을 소비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소설 습작을 시작한 회사원 이모(36)씨 역시 틈틈이 유튜브를 통해서 안톤 체호프나 기드 모파상, 프란츠 카프카, 제임스 조이스 등의 고전 소설을 공부한다. 주로 출퇴근 시간과 퇴근해 집 주변에서 산책할 때 소설을 읽어주는 유튜브를 시청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소설을 쓰려면 우선 먼저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하는데, 명작 소설들을 읽어주고 간단히 설명까지 주는 유튜브가 소설 읽기 공부에 도움이 된다”며 “먼저 유튜브로 두세 번 정도 시청한 다음에 책을 읽으면 훨씬 이해가 잘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튜브로 책을 소비하는 사람이 늘면서 김겨울 작가의 '겨울서점'은 구독자 26만명을 넘어섰다. 유튜브 화면 캡처

유튜브를 통해서 책을 접하고 소비하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북튜버들의 인기도 높아가고 있다. 간략한 설명과 함께 고전을 읽어주는 ‘해피 리더’, 낭독과 리뷰는 물론 북토크도 하는 김겨울 작가의 ‘겨울서점’, 최근에는 실용서 소개가 많은 ‘책 읽기 좋은 날’, 경제경영서와 자기계발서를 주로 소개하는 ‘책한민국’, 소설을 비롯해 책을 읽어주는 ‘책 읽어주는 루나펄스’, 다양한 책을 읽어주는 ‘안나의 북튜브’ 등은 모두 구독자가 10만명을 넘는 인기 북튜버들이다.

◆젊은 세대 “유튜브 시청은 또 하나의 독서”

유튜브를 통해서 책을 접하거나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책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독서라고 생각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그 비율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기술연구원이 지난해 11월 서울시민 103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뒤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대 응답자 가운데 ‘유튜브 등 동영상을 보는 것도 독서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19.6%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5명 가운데 1명꼴이다. 20대 응답자의 경우 13.5%, 30대 응답자는 10.2%, 40대 이상 연령대는 6∼10%가 유튜브 시청도 독서라고 답했다.

물론 독서의 범주로 종이책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89.3%, 전자책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78.1%를 기록하면서 여전히 우세를 보였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터넷 기반 정보까지 독서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국내 출판사들도 유튜브로 소통 시도

사람들이 종이책이 아닌 유튜브로 먼저 책을 접하고 소비하면서 출판사들도 유튜브 전략에 부심하고 있다. 심지어 오래전 출간된 책조차 인기 유튜버 등을 통해서 입소문을 타면 다시 인기를 구가하는 ‘역주행’도 적지 않다. 최진영 소설 ‘구의 증명’이나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 피터 나바로의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많은 출판사가 유튜브 채널을 직접 운영하거나, 유명한 북튜버와 협력을 통해 책 홍보나 이벤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창비나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민음사 등 국내 대형 출판사들이 모두 자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대체로 자사에서 나온 책을 소개하거나 저자를 출연시켜 북토크를 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기존 북튜버나 인기 유튜버들과 달리 구독자가 많지 않아 고민이다.

이런 가운데 출판사 가운데 최초로 10만 구독자를 확보한 ‘민음사TV’의 성공은 큰 주목을 끌기도 했다. 직접적인 책 소개나 작가와의 북토크 영상도 올리고 있지만, 직원들의 재미있는 일상을 담은 영상들이 인기가 많다. 민음사 조아란 부장은 ‘오은의 옹기종기’와 인터뷰에서 “유튜브 채널을 곧바로 출판사랑 연결짓는 건 사실 굉장히 생산자 마인드”라면서 “‘민음사TV’의 성공 요인이라고 한다면, 역시 홍보를 위해서 콘텐츠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냥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출판사들, 작가와 독자 연결 시도

해외 유수의 출판사들도 유튜브를 통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사의 책을 소개하고 독자와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세계적인 출판사 펭귄 랜덤 하우스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책 소개 영상은 물론 작가 인터뷰, 책 일부 리딩, 북 토크 등의 다양한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펭귄 토크(Penguin Talks)’ 시리즈에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유명 작가들과의 대화가 공개돼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영국의 블룸즈베리 출판사 역시 자사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책 소개와 작가 인터뷰, 자사에서 행하는 각종 이벤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하퍼콜린스 출판사나 시먼엔슈스터 출판사도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독자를 만나고 있다. 좀 더 정통적인 방식을 통해서 작가와 유튜브 독자 간 소통과 교류를 중시하는 모습이다.

 

◆“유튜브만으론 한계, 활자 책도 읽어야”

전문가들은 유튜브로 책을 접하거나 소비하는 현상은 영상이 대세가 된 상황에서 불가피하다면서도 책의 문제의식과 진수를 제대로 느끼고 이해하기 위해선 영상 시청과 함께 종이책 자체를 읽고 느껴야 한다고 조언한다. 즉 유튜브를 통해서 책으로 다양하게 접근하되, 종이책을 읽음으로써 책의 문제의식과 디테일한 사유와 경험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책에는 삶을 다시 살게 하거나 생각을 다시 하게 하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며 “유튜브를 통해서 책의 내용이나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지만, 책처럼 삶을 다시 살게 하거나 생각을 다시 하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양손잡이 독서’를 주장했다.

유튜브 시청과 종이책을 함께 읽는 ‘양손잡이 독서’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제도 및 인식 개선이나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우선, 영상 콘텐츠를 제작 유통에서 표절과 저작권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 원작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제작 유통돼야 한다는 것이다. 부정확한 정보나 부적절한 해석, 질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유튜브를 통해서 독서하는 경우 깊은 이해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