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양적성장 본궤도… “질적성장으로 눈 돌려야”

상반기 투자액 4.4조원

2022년 동기보다 40% 줄었지만
코로나發 유동성 확대 고려 땐
“오히려 지 않은 규모” 분석
GDP 대비 핀란드에 이은 6위

선진국 VC, 비재무적 지원 중점
한국은 단순 자금공급에 머물러
인재발굴·고객유치·경영전략 등
지원 정책 획기적 개선 필요성

올해 상반기 벤처기업 투자 액수가 4조원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40%나 줄어든 실적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유동성 확대를 고려한다면 오히려 정상궤도로 돌아온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내 벤처투자는 양적으로 볼 때는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뒤처지지 않는 추세다. 하지만 자금공급 외 경영자문이나 사업 멘토링과 같은 비재무적 서비스나 전문 투자자문과 같은 질적인 부분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많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벤처투자’는 점점 낮아지고 있는 한국 경제성장률을 반등시킬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벤처투자 관련 투자방향을 개선해볼 때가 됐다는 지적이다.

 

◆벤처투자 4.4조원… “장기추세 회복”

 

14일 금융위원회와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벤처투자는 4조4447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의 7조6442억원에 비하면 41.9%, 2021년의 6조5725억원에 비하면 32.4%가 감소했다. 투자 건수도 올해 상반기 2927건을 기록해 지난해 상반기(4191건)보단 30.2%, 2021년 상반기(3598건)보다는 18.6% 감소한 수치를 기록했다.

 

수치를 따지고 보면 매우 감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금융당국은 지난해와 2021년은 코로나19로 각국 정부가 양적완화를 확대한 영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벤처투자 특성상, 실제 투자까지 1∼2년간의 시일이 걸리는데 이를 고려할 때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로 각국 중앙은행이 양적완화 조치를 취한 이후인 2021년부터 자금 증대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정부는 미국·일본·이스라엘 등 주요 선진국의 지난 5년간 벤처투자 실적을 병행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이후 2021년과 2022년도에 공통으로 투자액이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19에 따른 양적완화와 관계없는 것으로 보이는 2020년 상반기 통계와 올해 상반기를 비교한다면, 벤처투자액은 1조2737억원(40.2%), 투자 건수는 639건(27.9%) 늘어났다.

ICT, 바이오 등 특정 종목 투자에 집중됐던 것이 완화된 것도 올해 상반기 벤처투자의 또 다른 특징이다. 금융위와 중기부에 따르면, 지난해 ICT서비스와 바이오·의료 부분 벤처투자액은 각각 2조2490억원과 1조3159억원으로 두 부분을 합치면 전체 투자액의 46.6%를 차지했지만, 올해 상반기엔 각각 8776억원과 5961억원으로 줄어들면서 비중이 33.2%로 많이 감소했다. 정부는 분석결과 △원격 의료 및 병원·의료 등 관련 플랫폼 △원격근무·화상시스템 △온라인 교육시스템 △전자상거래 등 대면접촉이 특히 적은 사업모델에서 투자액 비중이 일정 수준 이상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즉,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pandemic·전 세계적 감염병 유행) 기간 동안 양적완화로 늘어난 모험자본이 비대면과 의료 등 특정 업종에 투자를 늘렸지만, 지난해부터 감염증상이 약화하고 올해 들어 엔데믹(endemic·일상적 유행)으로 전환되면서 비대면·바이오 투자가 급속히 줄어드는 등의 변화를 보였다는 것이다. 정부는 2008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15년간의 벤처투자 추세를 함께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실적은 장기추세를 회복하고 있음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급성장 벤처투자, 질적 경쟁력 확보”

 

한국의 벤처투자는 전 세계 기준으로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벤처기업에 자금을 대는 금융자본을 의미하는 ‘벤처캐피털’에서 한국의 총 투자 규모는 46억7000만달러로 미국(2544억1000만달러), 캐나다(94억2000만달러), 이스라엘(83억9000만달러), 영국(61억6000만달러), 독일(49억3000만달러)에 이어 6위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비중도 0.26%로 이스라엘(1.72%), 미국(1.09%), 에스토니아(0.47%), 캐나다(0.47%), 핀란드(0.31%)에 이은 6위다.

 

이런 높은 성장에는 모태펀드, 혁신모험펀드와 같은 정부 차원의 지원도 큰 역할을 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송민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벤처캐피털 시장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과제’ 보고서에서 정부가 주도한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은 벤처기업의 비율을 국가별로 비교해보면 한국이 조사대상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정책금융을 통한 벤처투자는 6620억원으로 전체의 14.4%를, 민간 부분은 3조9297억원으로 전체의 85.6%를 차지한다. 다만, 민간 부분에 속해있는 금융기관 중에는 기업은행과 같은 공적 성격을 띠는 은행도 있어 전체 공적 벤처투자 규모는 좀 더 늘어날 수 있다.

양적 성장은 어느 정도 본궤도에 자리 잡았던 만큼 이젠 ‘질적 성장’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우선 비재무적 서비스 지원 등과 같은 요소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선진국에서는 벤처캐피털이 경영진 등 인재발굴, 고객 유치, 경영전략 수립, 자금확보 등을 위한 네트워크 소개 등을 포괄하는데, 한국은 단순한 자금공급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2021년 중기부와 벤처기업협회가 함께 실시한 벤처기업정밀실태조사에서 벤처기업의 78%가 벤처캐피털들이 ‘자금투자 외에는 거의 역할이 없었다’고 답했다. 일정 부분 역할을 담당했다는 답은 22%에 그쳤다. 단순 자금공급 외에 비재무적 서비스 제공으로 인해 벤처기업들의 실적 향상을 끌어내고 이를 다시 벤처캐피털의 명성 증가로 이어지게 해 선순환 구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벤처캐피털의 펀드 및 건별 투자 규모도 영세한 수준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주요 선진국의 벤처캐피털 펀드는 1000억원 이상의 규모로 조성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은 300억∼400억원 규모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또 벤처캐피털 전문 데이터베이스나 전문 투자자문사도 찾기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싶어도 벤처캐피털이 벤처기업의 수익성 전망과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면 자연히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서 연구위원은 “우리 벤처캐피털 시장이 정부와 금융당국의 정책적 노력으로 급성장한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면서 “이제는 급성장한 벤처캐피털 시장이 자생적인 시장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세밀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