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가정 부담 덜어야” vs “임금 너무 높아… 신뢰도 의문” [심층기획-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논란]

갈수록 돌봄 부담 높고 수요도 늘지만
내국인 가사근로자 고령화 속 공급 ↓
정부, ‘빈 일자리’ 문제 해소 팔 걷어

연내 ‘최저임금 적용’ 시범 도입 계획
정치권, 최임 미적용법 발의 등 부정적
전문가 “국적·인종 무관 일률 적용해야”

시장선 내국인 노동 환경 보완 목소리
“가사법 시행 1년 만에 혼란 초래 우려
저출산 시대 공급 확대 심사숙고해야”

주변국가 도입 사례 살펴보니
日, 2017년 적용… 1년 이상 실무력 요구
도쿄 등 대도시 수요 많아 확대 검토 계획
동남아는 직접 고용… 가정서 보험 등 부담
신분·서비스 질 보장 어려운 게 단점 꼽혀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게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맞벌이 직장인 A씨)

 

“내국인은 구하기도 어려운데 숙련된 가사근로자가 온다면 환영할 일이죠.”(맞벌이 직장인 B씨)

 

정부가 필리핀 등의 외국인 가사근로자(가사관리사)를 연내 시범적으로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시장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를 ‘값싼 노동력’으로 인식해 온 사회 분위기 속에 최저임금 반대 목소리가 더해지며 외국인 차별 논란으로 확산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정부가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도입하기에 앞서 가사노동을 저평가하는 사회적 인식과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해소하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도 나온다.

 

◆‘돌봄 부담’·‘빈 일자리’ 해소될까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은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한국사회가 직면한 두 가지 난제와 연관돼 있다. 맞벌이 부부가 겪는 돌봄에 대한 부담, 그들에게 가사·돌봄 서비스를 공급하는 근로자들의 감소와 고령화가 그 배경이다. 가사근로자에 대한 수요에도 공급이 줄어드는 것은 ‘빈 일자리’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제조업에 적용했던 E-9(비전문외국인) 비자로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도입하겠다는 구상이다.



1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외국인 가사근로자의 출신국으로는 가사 관련 자격증 제도를 운영하는 필리핀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인증한 서비스 기관을 통해 국내에 고용되고 각 가정으로 파견된다.

시장의 변화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문제는 기존 시장에서 ‘외국인 근로자’와 ‘가사근로자’ 모두 처우가 열악하다는 점에 있다. 단적인 예가 외국인 가사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논란이다.

 

정부는 연내 시범적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했다. 주 40시간을 근무할 경우 월 201만원 수준이다. 서울의 경우 가사근로자의 시급이 약 1만5000원인 점을 고려하면 3분의 2 수준으로 책정된 셈이다. 또 기존에 입주형 가사근로자의 경우 내국인은 월 350만~450만원, 중국동포는 월 250만~350만원을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게 적용된 최저임금이 기존 내국인에 비해 한참 낮은 수준이지만, 시장에서는 “비싸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분기 기준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505만4000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용자’가 될 각 가정에는 부담이라는 목소리다.

이런 논란 속에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외국인에게 200만원 이상을 주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부정적 의견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이 말 그대로 최저 수준의 임금 기준인 만큼, 정부 주도 사업에서 예외를 두긴 어렵다고 지적한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을 경우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상의 차별 금지 규정을 위반하게 된다”며 “자칫 차별적 국가로 낙인찍힐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도 “최저임금은 국적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라며 “국내의 수요층에서 최저임금을 지급하기 어렵다면 그건 국내 노동시장의 문제인 것이지, 외국인 근로자의 문제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내국인 처우·인식부터 개선해야”

시장에서는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도입하기에 앞서 국내 가사근로자에 대한 처우 개선이 먼저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가사근로자는 2019년 15만6000명에서 지난해 11만4000명으로 3년 만에 27%가량 감소했다. 이들 중 50대 이상의 비중은 92.3%에 달하고 있다. 가사근로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50대 이상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데 반해, 가사근로자가 유독 감소하는 것은 처우나 인식이 열악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이런 문제는 정부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가사근로자를 ‘아줌마’나 ‘이모님’이 아닌 ‘가사관리사’(관리사님)로 부를 것을 정부가 나서 권장하기도 했다. 실생활에서 가사노동과 가사근로자들의 전문성을 존중하자는 취지에서다. 가사근로자에 대한 명칭을 고민할 만큼 처우 개선을 위한 정책적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가사근로자법을 시행해 가사근로자의 최저임금과 사회보험 보장을 명문화했고, 정부가 인증한 기관을 통한 채용과 고용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되고 이제 막 1년여가 지난 시점에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 시장에 혼란을 줄 것이란 우려가 높다.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앞서 고용부의 공청회에서 “지난해부터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에 대한 의견이 나왔는데,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정책이 만들어졌다”며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이 앞으로 더 늘어나게 될 고령의 구직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의 배경으로 거론되는 저출산 문제에서도 가사근로자의 공급을 늘리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 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11월 펴낸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에서 부모들은 돌봄 서비스를 제공받아 일하는 시간을 보장하는 것보다, 일하는 시간을 조정해 자녀를 직접 돌보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보사연의 ‘2021년도 가족과 출산조사’에서는 민간돌보미를 원하는 비율이 0.7%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사나 돌봄노동의 특수성을 고려해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제조업과 달리 가사 분야의 외국인 유입은 피부로 와 닿는 부분인 만큼 시장의 수요와 공급 논리 이외에 따져봐야 할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김 이사장은 “외국인 근로자의 도입은 시대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이것을 무작정 도입하기 이전에 내국인들도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문화적 격차 해소 등 감안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결코 손쉬운 해결방법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외국인 근로자가 들어오면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사후 관리를 위한 사전 준비가 필수적”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정부의 이민 확대 구상을 위해서도 우리 사회가 적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 사업 공청회’ 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시범사업 도입 반대를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日, 내국인과 동일한 노동법 적용… 경력·일어 필수

 

한국보다 먼저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도입한 주변국으로는 일본과 대만, 싱가포르, 홍콩이 있다. 이들 국가는 한국과 달리 민간 주도로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도입했지만, 그만큼 신분이나 서비스의 질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이 단점으로 거론된다.

 

16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2017년 관련 제도를 도입한 일본은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게 내국인과 동일한 노동법을 적용하고 있다. 임금 역시 내국인과 같은 수준으로 보장된다. 대신 조건도 까다로운 편이다. 가사근로자는 18세 이상으로 1년 이상의 실무 경력이 있어야 하며 일정 수준의 일본어 구사 능력이 요구된다. 현재는 도쿄와 오사카 등의 대도시에서만 시행 중이지만, 지역에서도 가사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높아 확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행 첫해인 2017년 외국인 가사근로자는 599가구에서 이용했지만, 2020년에는 5518가구가 이용할 만큼 성장했다.

 

대만과 싱가포르, 홍콩은 각 가정에서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직접 고용한다. 고용 주체가 각 가정에 있는 만큼 임금을 비롯해 고용안정기금, 보증금, 건강·상해보험, 초과근무수당, 항공료 등을 부담해야 한다. 다만 지불하는 임금은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알려졌다. 대만의 경우 가사근로자가 월 110만~120만원 수준, 싱가포르와 홍콩은 40만~60만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에서 시범 도입하는 가사근로자의 최저임금 적용 논란이 제기되며 이들 국가의 임금이 곧잘 비교되기도 했으나, 한국의 경우 고용 과정에서 공공이 개입해 신분이나 서비스의 질을 일정 부분 보장하겠다는 계획이다. 단순히 가격만 놓고 비교하긴 어렵다는 평가다.

 

국내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과 관련해 최저임금 논란이 제기되면서 프랑스나 독일 등에서 시행하는 ‘오페어’(Au Pair) 제도도 주목받고 있다. 오페어는 외국인이 가정에서 생활하며 가사나 돌봄 등의 업무를 하지만, 노동보다는 문화 교류의 성격이 짙다. 일종의 워킹 홀리데이로 볼 수 있다. 최근 해외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인 만큼 관련 수요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용부는 최근 발표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계획에 대한 의견 수렴을 가진 뒤 외국인력정책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연내 시행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