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의 승패가 달린 수도권 선거에 대한 당의 진로를 놓고 국민의힘 내 갈등이 커지고 있다. 당 일각에서 ‘수도권 위기론’을 주장하며 영남·강원권 인사 위주로 구성된 현 지도부를 비판하자, 지도부가 “당을 폄훼하고 조롱하지 말라”(이철규 사무총장)고 반응하는 등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도부가 총선 인재 영입과 정책 발굴 등을 통해 ‘수도권 역량’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면 파열음은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인천 지역 4선의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18일 SBS 라디오에서 “제3정당이 나오면 (국민의힘과) 지지율이 비슷하다. 30% 이상”이라면서 “수도권 거의 모든 지역이 1000표, 1500표 싸움”이라고 ‘수도권 위기론’을 재차 제기했다. 윤 의원은 “(제3정당이)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3지대에 있는 사람들도 포용하고 그것에 대한 전략을 갖춰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의원은 지난 9일 페이스북에서 “집권당의 현주소는 당 지도부의 책임이 크다”며 “수도권, 중도층, 2030세대 등 중요 유권자가 지지할 수 있는 혁신을 시작해야 한다. 민주당과 다른 진짜 혁신위를 출범시켜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수도권이 위기 상황이라는 데는 공감하지만, 그 원인을 당 지도부에 돌리는 건 ‘리더십 흔들기’로 보는 기류가 강했다. 수도권은 보수 정당의 전통적인 험지로 꼽히는데 위기론을 제기하며 지도부를 비판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윤 의원이 ‘혁신위 출범’을 주장하고 당을 암 환자에 비유하자 지도부의 반감이 커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이철규 사무총장이 지난 16일 의원총회에서 ‘배를 침몰하게 하는 승객은 함께 승선 못 한다’고 말하고, 해당 발언이 윤 의원을 겨냥한 해석이 뒤따르면서 ‘수도권 위기론’을 둘러싼 당내 갈등은 커지는 양상이다. 이 총장은 전날에도 “사실에 기초해서 의견을 개진하는 것과 당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것은 다르다”며 “당을 모욕하는 것을 내버려 두고, 잘했다고 박수쳐야 하는가”라고 했다.
그러나 윤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당이라는 배가 좌초되거나 어려워지면 당 지도부에 있는 의원이 아니라 수도권에 있는 의원들이 가장 먼저 죽는다”며 지도부를 다시금 겨냥했다.
그는 “이런 것(수도권 위기론)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무엇이 위기인지에 대해 본질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게 진짜 위기”라며 “이분들(지도부)이 저희 같은 인천 지역에 와서 온종일 돌아다녀 보라. 뭐가 위기인지 금방 알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 지도부에 날을 세워온 비윤(비윤석열)계도 비판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하태경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배를 수리하는 쓴소리와 배를 침몰시키는 막말과 악담을 구분 못 하는 정당은 미래가 없다”며 “민주당이 국민에게 외면당한 것도 당내 쓴소리를 전부 틀어막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전날 YTN 인터뷰에서 울산 지역 4선인 김기현 대표, 대구 지역 3선인 윤재옥 원내대표를 거론하면서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수도권 선거를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며 “남 탓할 것 없이 지금 배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니까 좀 내부 수리부터 하라”고 했다.
한 초선의원은 통화에서 “지도부에 영남권 출신이 많아서 그런지 수도권에 위기의식이 없어 보인다”며 “중도의 마음을 붙잡아야 하는데 당도 국정 운영도 지나치게 보수 지향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