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결격 사유’에 없는 양육 의무 ‘해태’…높아지는 ‘민법 개정안’ 통과 목소리

54년 만에 나타나 아들 사망 보험금 가져가겠다는 친모에 유족 측 울분
과거 한 방송에서 친모는 “(자식) 안 버려… 나도 살아야 할 거 아닌가”
양육자의 양육 의무 논한 ‘민법 개정안’ 발의에 국회 국민동의청원 제기되기도
세계일보 자료사진

 

50여년간 연락 없던 친모가 나타나 아들 사망 보험금 등 3억여원을 가져가려 한다는 유족의 울분이 공개되면서, 양육 의무를 게을리한 양육자의 상속 결격 사유를 명문화해야 한다는 민법 개정안 국회 통과 촉구 목소리가 높아진다. 양육자의 양육 의무 ‘해태(懈怠)’는 현행법상 상속 결격 사유에 속하지 않으며 관련 개정안이 수차례 발의되고도 임기만료로 폐기됐거나 국회에 계류 중으로 알려지면서다.

 

앞서 2021년 경남 거제 앞바다에서 어선을 타던 중 폭풍우로 생을 마감한 고(故) 김종안씨의 친누나 종선씨는 지난 6월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 기자회견에 나와 “갓난아기 때 자식을 버리고 재혼한 후 연락이 한 번도 없다가 자식이 죽자 보상금을 타러 54년 만에 나타난 사람을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느냐”고 울부짖었다.

 

종선씨는 “생모에게 버림받은 3남매는 주린 배를 움켜잡으며 어렵게 살았지만 할머니와 고모가 사랑으로 보살펴줬다”면서, “죽은 동생의 법적 권리자는 사실혼 관계 배우자와 우리 3남매를 키운 고모 김옥씨와 친할머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생모는 우리 동생이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우리를 보러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거듭 울분을 토했다.

 

2021년 경남 거제 앞바다에서 어선을 타던 중 폭풍우를 만나 생을 마감한 고(故) 김종안씨의 친누나 종선씨가 지난 6월,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54년 만에 나타난 생모가 동생의 사망 보상금을 모두 가져가려고 해 억울하다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연합뉴스

 

80대 친모 A씨는 보험금 일부인 1억원을 종선씨에게 지급하라는 부산고법의 최근 화해권고결정에 불복해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A씨는 민법의 상속 규정에 따라 사망 보험금을 모두 가져가겠다고 주장하며, 그의 화해권고결정 거절에 따라 오는 31일 재판부의 정식 판결을 종선씨는 기다려야 한다.

 

A씨는 지난해 4월 MBC ‘실화탐사대’에서 “꼭 사망보험금을 다 타 먹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식들을) 버리고 간 건 아니다. 나도 살아야 할 거 아니냐”며 이처럼 주장했다. ‘도리를 다하셨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어렸을 때는 내가 다 키워줬지, 혼자 컸나”라며 “자기는 나한테 뭘 해줬나? 약을 한 개 사줘 봤나, 밥을 한 끼 해줘 봤나. 나는 (사망보험금) 꼭 타 먹을 거다. 나도 자식들한테 할 만큼 했다. 나를 죽으라 하지만 안 죽을 거다. 우리 아들 돈 좀 쓰고 죽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MBC ‘실화탐사대’ 캡처

 

현행 민법 제1004조는 ▲고의로 직계존속과 피상속인, 그의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나 같은 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자 ▲고의로 직계존속과 피상속인, 배우자에게 상해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자 ▲사기 등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 또는 유언 철회를 방해한 자 ▲사기 등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을 하게 한 자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서를 위·변조·파기 또는 은닉한 자를 상속인이 되지 못하게 규정한다.

 

형법상 존속살해, 상해치사, 사기죄, 강요죄, 사문서위변조죄 등에 해당해 객관적 사실행위나 고의성 등이 그 요건으로 해석된다.

 

제20대 국회에 해당하는 2019년 3월,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민법 개정안’을 놓고 검토보고서는 “자녀 부양 의무를 해태한 부모의 원칙적인 상속인 배제는 강력한 수준으로 상속 제한을 받는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으면서도, “부양 의무의 현저한 해태라는 개념이 불명확해 이를 보완할 필요성이 있다”고 부연했다.

 

이와 함께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상속 결격 사유에 관한 사항을 민법 1004조에 추가하는 방안과 일정한 청구권자의 청구를 통해 법원이 해당 상속인의 상속권 상실 여부를 판단, 결정하도록 하는 ‘상속권 상실선고 제도’ 신설 방안을 논의했다”고 언급했다.

 

양육자가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을 객관적으로 나타낼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읽히는데, 후자를 두고 자녀가 자신을 양육하지 않은 부모를 상대로 상속권 상실 재판을 청구하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지적이 일부에서 나온다.

 

보고서는 “민법이 제정된 1958년에는 이혼율이 낮고 여성의 재혼이 제한되는 등 전통적 가족제도가 상당히 강하게 유지돼 부모가 자식 양육 의무를 해태할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며 “2019년에는 이혼 건수가 11만건으로 급격히 증가하는 등 다양한 가족형태가 나타나 법률상 부모가 자녀와 장기간 떨어져 살면서 양육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양자간 유대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개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녀 부양의무를 게을리한 친생부모 등을 상속 결격 사유에 추가한다는 같은 법 개정안이 그해 총 4건 발의됐고, ‘자녀 양육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자녀의 사망으로 인한 재산적 이득을 부모가 취하게 된다는 점에서 보편적 정의와 인륜에 반한다’는 취지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도 10만명이 동의했지만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가수 고(故) 구하라씨의 오빠 구호인씨가 ‘어린 구씨를 버리고 가출한 친모가 구씨 사망 후 상속재산 절반을 받아가려 한다’며 입법을 청원해 ‘구하라법’으로도 불리는 민법 개정안. 서 의원이 양육을 게을리하는 등 양육 의무를 위반한 이는 상속인이 되지 못하게 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 개정안을 2021년 발의했고, 법무부도 지난해 6월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여야의 정쟁 속에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